[이윤석] 강도만난 자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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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강도만난 자의 이웃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설교 : 이윤석 목사 (부르클린제일교회)
이 말씀은 우리 역사 문화와 기독교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말씀 중 하나다. 이로 도전받은 기독교인이 병원사역, 자선사업, 봉사와 헌신의 삶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서 온 세상에 선교의 헌신으로 삶을 바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너무 잘안다. 그래서 문제인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기에 오히려 이 말씀에 무관심하지 않나요?
오늘 주님말씀을 지식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새로운 각성의 마음으로 듣자!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실천적인 진리를 말씀한다. 먼저는 믿어야 할 진리, 그리고 그 믿음을 따라 행해야 할 진리를 말씀하신다.
그래서 지금 본문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하는가?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자신은 영생을 얻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율법을 열심히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인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결코 정직하지 않다. 그는 자기를 드러내고 예수님을 걸고 넘어뜨리려 시험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늘 직접 대답을 주는 것을 피하고 진지하게 대답대신 되물어보신다.
26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핵심질문이다. 심문을 받던 분이 심문자가 되신다! 너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런데 확실히 율법박사인지라, 정확하게 대답한다. 구약의 요약이다.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신명기 6장 5절과 레위기 19장 18절을 합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28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하시니
예수님은 즉각 네가 알고 있고, 설교하는 것을 실천하라! 하신다.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죠!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예수님은 레위기 18장 5절을 인용하신 것이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예수님은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심이 아니라, 이 사람이 그것을 행하는지 물으시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이 율법교사는 아직 이 계명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생명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올바른 대답을 안다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없고, 영생도 아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반대로 구원의 열매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임을 말한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해, 따라가야 하는 좁은 길을 분명히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자!
이 율법교사는 자신이 선생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입증하려 둘째 질문을 한다.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이 사람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친척, 친구, 동족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랑했지? 자랑스럽게 말하려 하고 있다. 자신의 선행이 칭찬받고 영생이 보장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환호소리를 듣기를 기대할 수 있다. 자기가 사랑할 사람의 범위를 다 정해 놓았다.
이야기를 다 끝내고, 물으시고 대답하신다.
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 환난 당한 자, 아마 유대인 => 환난으로 가득 찬 세상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일들이 오늘도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은 해발 690미터, 여리고는 해수면 아래로 390미터다. 그러하니 1080미터가 낮아지는 길로, 바위 투성이의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혼자 가면 안되는 길이다. 일명 ‘피의 길’이라른 악명높은 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급해서인지 용감해서인지, 아무튼 혼자 위험하게 길을 가다 지금도 있는 노상강도들에게 당해서, 강탈당하여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다!
우리들도 집을 떠나게 되면 고통은 우리와 함께 다니는 여행자가 된다. 항상 만난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 고국여행이나 먼 곳 여행때 함께 기도하고 지켜주시길 위해 합심해서 기도하고 떠났으면 좋겠다.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안전 지역에 있지 않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1) 이 환난은 고난받는 자의 실수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저항도 못해본 채 강도들에게 상처를 입고 옷을 빼앗겨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행이었다. 세상에는 커다란 슬픔을 당할만큼 어리석거나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일을 만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 그 고난 받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가 더 죄인이어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만의 지혜로운 목적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가 있다. 그는 아무 잘못됨 없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기 이웃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해, 동정,체휼이 필요한 사람이다!
2) 더욱이 많은 수의 고통들은 다른 사람의 악행으로 인해 일어난다.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난 그 불쌍한 유대인은 자기를 때려 거반 죽게 만든 그 강도들의 희생물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사람이죠! 사람들 마음 속에서 악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인간 고통의 대부분은 멈추리라! 주정뱅이의 낭비와 만행, 교만한 사람들의 냉소, 압제자의 잔인성, 비방자의 거짓말, 사기꾼 협잡, 가난한 사람을 후리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의 악행, 이렇게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무고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의 동정심이 우러나와야 한다! 그들이 사고나 질병으로 상처를 입고 병원을 찾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동정심과 긍휼의 마음이 흘러나오고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 마땅하다!
3)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 손도 쓸 수 없었다.
이제 누워 있다가 그냥 죽을 판이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음뿐이었다. 이것이 인간 상태이다. 이럴 때, 크리스찬이면 신속하게 참된 박애정신이 작동해야 한다!
4) 인생의 어떤 길들은 특별하게 환난을 만나게 되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피의 길, 항상 강도가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 그처럼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는 질병과 사고로 인해 극히 위험한 인생길이다! 강도를 만나지 않아도, 실제로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질병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여러분 가정이 늘 화목하고 성도와 즐거운 교제를 누리고 있다면 매우 감사하자! 좁게는 자신을 위해, 넓게는 사회유익을 위해 그 위험한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더 많은 각오를 하자! 그런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호의를 받을 첫 번째 대상이 되게하자!
2. 그런데 두 번째 환난을 전혀 돌아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사람!
1) 그들은 하나님 섭리에 의해 환난당한 자를 도우라고 그곳으로 인도함 받았다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가장 적절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도우라고 보내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기쁨을 감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 반대편으로 지나갔다.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피해갔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죠! 그는 상처난 몸을 돌볼, 형제애를 발휘하여 힘을 북돋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제사장이 여기에 온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경륜이었다. 그런 다음, 레위인이 온 것은 앞 제사장이 시작한 일을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그 불쌍한 사람을 떼메고 갈 수 없다면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해 여관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한 사람은 지키고 한 사람은 도움을 청하러 뛰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 자리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고의적으로 섭리와 인류애가 요구하는 그 거룩한 의무를 거절했다. 기회를 차 버린 것이다!
누가요?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성도가 그랬다는 것이다.
누가요? 찬양을 담당하고 성전을 섬겼던 레위인이라는 사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들이 마땅히 예배드리고 내려가는 길, 성전에서 섬기고 가는 길이다. 이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재판장께서 심문하실 범죄인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고 구해 주라는 의도에서 거기에 보내신 것이다. 우리는 피해가지 말자! 심판장으로 오시는 분 앞에 서자!
2) 이 두 사람은 마땅히 그런 사람을 돌보고 건져내야 할 사람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잘 드리고 내려가는 길이죠. 성전에서 지존자를 예배했죠. 거룩한 기도문을 낭독했다. 자기 마음을 달래는 일에만 매우 익숙해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들은 예배드릴 때는 크리스찬 같았는데, 예배를 끝나고 나가는 길은 마음이 강퍅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닮지 않았다.
여러분은 주일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보낼 수 있고, 그리스도를 붙들 수 있다. 그러나 환난 당한 자, 고통 당하는 자, 병원의 이웃을 위한 느낌이 있는가?
3) 두 사람은 직업적 소명으로 볼 때, 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어야 했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불쌍히 여기는 심령을 가진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말하기 위해 선택받은 제사장이어야 한다! 부드럽고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동정하는 인자한 마음으로 가득해야 한다! 누가 제사장이고 누가 레위인인가?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바로 제사장이요 레위인이다! 오늘도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결코 잊지 말자! 우리에게 그 놀라운 은혜 속에 들어가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기억하자! 그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나타내는 성도되자!
4) 그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의 상태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강도 만난 사람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갔고 그 상태를 보았다. 처음에 온 제사장이 보았지만, 황급히 피해갔다.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이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자기는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아니라고 재빨리 결정하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피해갔다. 그들은 함께 냉담했다. 자기 정당화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지죠. 빨리 가서 가족을 돌보아야죠! 정해진 시간 안에 여리고에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시간 손해볼 수 있죠. 더구나 이 사람처럼 강도들에게 같이 당할 수 있다. 또한 한 두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죽을 사람이다. 가망성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었다. 제사장은 레위 사람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뒤에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며 얼른 떠날 수 있다. 두 사람도 강도만나 부상당할 수 있다. 시체 옆에서 살인자로 몰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 두 사람은 얼마든지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다. 자기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다. 경건한 묵상을 하며 서두를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은 그럴듯한 핑계를 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변명 때문에 한탄해야 한다. 이웃이 병들고 심지어 병들어 죽게 되어도, 우리 마음이 강퍅한 상태를 지니고 있음을 슬퍼해야 한다
3. 사마리아 사람 = 환난당한 자들을 돕는 이들의 모델= 충격적인 이야기다!
1) 사마리아인이 도왔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주목해보라.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정말 적대감을 가지고 크게 미워한다.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증오의 대상이었다. 자기들을 개취급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인을 보라! [원수사랑] 그를 보자 마자 불쌍히 여겨!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2) 사마리아인은 그가 그 일을 하는 정신에 있어 우리 모델이 된다.
사마리아인은 “어째서 내가 도와야 한단 말인가? 우리 백성을 외면하고 저주하는 이 사람들 중 하나를 왜 도와야 하는가? 제사장과 레위인도 그를 버려두고 가지 않았는가? 자기 동족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해야지?
성도여! 우리는 이 사마리이안으로 인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자! 적어도 사마리아인만큼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결코 의문을 달지 않았다.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대번에 그를 도왔다. 이 사람은 큰 자애와 관심을 가지고 자기 불쌍한 이웃을 도왔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긍휼을 베품이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다.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3) 그가 무엇을 했는가? 긍휼의 구체적인 행동이 어떤 것인가?
34,35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디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1) 먼저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었다.(체휼)
(2) 그 사람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기술을 발휘해 상처를 싸맸다(최선행동)
(3) 상처 감쌀 끈을 얻기 위해 자기겉옷을 찢고, 자기도 피투성이 됨!(희생)
(4) 그는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었다. 당시 싸맴과 소독치유의 상비약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상처를 싸맨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기름과 포도주는 성전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
(5) 그리고 자신은 걸어서 주막으로 가고 있다.
(6) 정성껏 돌보아 준다.
그는 종의 모습을 취한다.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며 위험한 일이다. 강도들이 다시 덤벼들 태세를 할 수 있 있고, 자신이 도움을 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그 가족들이 비난하며 피의 보복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를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배운대로 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받자!
(7) 사마리인은 멈추지 않고 자기의 친절한 행동을 철저히 계속 수행한다.
두 데나리온은 24일의 숙박비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 한다. 우리 모두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거듭나자! 변화되자!
4.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마리아인보다 더 높은 완전한 모델이 있다 =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질문의 답변을 하고 계시죠! 이 비유는 지상에서 살았던 이 가운데 가장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그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이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으로 부르고 조롱했다.
1)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보다 훨썬 더 선한 일을 행하셨고 행하신다.
왜? 우리의 경우는 강도 만난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였었다. 이 부상당한 사람은 그의 허물이나 책임이 아니라, 찾아온 불행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죽음이 아닌, 죄와 허물 가운데 전적으로 죽어 있었다. 우리의 옷을 벗긴 강도들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불의였고, 우리가 받은 상처들은 우리 손으로 할퀴어 생겨난 것들이다. 본성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를 그분의 여관, 곧 교회로 인도하셨다! 우리는 안식하였고 그분께서 풍성하게 제공하시는 말씀의 음식까지도 먹었다. 비참한 우리의 상황을 발견하셨을 때 구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기이한 사랑이었다.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마음을 기울이사 우리를 자리에서 높이 드셨다!
2)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한 혈족. 모두 사람이죠. 그러나 주 예수님은 다르다.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무한히 높으신 분, 사람의 모양대로 나타나셨다면, 그분께서 그렇게 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에 구유를 거쳐 우리 죄와 고통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면, 이는 그분의 무한하신 긍휼 때문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사업차 그곳에 가다가 그 사람을 도왔지만,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신 것은 사업차 오심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키 위해 오셨다! 우리 주님이 육체를 입으신 것은 우리를 체휼하시기 위함이다! 인간 되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서 우리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동정심을 본다. 이 땅에 게시면서 우리가 강도만났던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강도들에게 습격을 받는 위험을 무읖썼을 뿐 아니라, 실제 그들에게 공격당하셨다. 그는 상처입고 채찍에 맞으실 뿐 아니라, 거반 아니라, 완전히 죽으셨다! 죄라는 강도가 우리게 행한 그 악행을 그분 자신이 몸소 겪어 보지 않고는 그 악행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구원의 고통을 받으셨다!
3) 사마리아인이 그 불쌍한 사람에게 주었던 것은 너그러움이었다.
그러나 주 JX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a.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에게 포도주와 기름을 주었지만, 주님은 우리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자기 심장의 피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리셨다!
b. 사마리아아인은 친절함으로 정성을 쏟았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셨다!
c. 사마리아인은 두 데나리온을 주었지만,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죠?
고후 8:9 우리 주 JX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기이한 선물들은 놀랍다! 천국이 바로 그 복이다! 그러나 주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선물이시다!
4) 사마리아인의 긍휼은 잠간 동안만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a. 그가 나귀 옆에서 걸어가야만 했다 하더라도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X께서는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 평생 걸으셨다
b. 사마리아아 사람은 그 여관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 것은 가서 볼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와 한평생 함께 계셨다!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까지다. 아니! 지금도 주님은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계시고, 우리들에게 언제나 복을 주고 계신다!
5) 사마리아인은 가면서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며 다시 올 때 일어날 일에 대한 복된 약속을 주셨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몇 년이 지나면 그 유대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못하리라.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와 다르시다. 왜요? 우리가 계속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계속 우리를 돌보고 있고, 그분의 사랑의 행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수많은 경우마다 계속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을 사람이 있는 한, 그 일을 게속되고 피해 나와야 할 지옥이 있고 얻어야 할 천국이 있는 한 그 일은 계속 일하실 것이다!
[결어]
1) 자기 행위로 구원을 받기를 희망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판단해 보라.
만일 율법사처럼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으려 한다면 마음과 뜻과 온 정성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 두가지에 있어서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가? 불가능이다. 그로서 결코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 영생을 얻지 못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은헤로, J믿음을 통해 구원받았다!
우리를 흘리신 피로 구속하시고, 주의 머리와 몸된 교회로 인도하셨다! 그분의 사역자들에게 여러분을 잘 돌보라고 맡기셨다. 이제 곧 오시리라! 그 동안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자가 되도록 애쓰자! 이제 우리가 그분의 은혜와 구원과 사랑을 온통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과 우리의 진정한 관계가 온전해졌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는 사마리아인 이상이 될 수 있다!
율법사는 영생과 관계없이 고백했지만, 우리는 영생을 얻은 자로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름받았다!
온 생명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은 자 답게 진정한 제사장으로, 진정한 레위인으로 살자! 이웃 살리는 자 되자!
부르클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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