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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갈렙] 광야 다음에 다시 광야로 -

복음뉴스 0 2022.04.09 11:56

문갈렙 선교사의 Mission Field 단상(斷想) ④  광야 다음에 다시 광야로 -

글 : 문갈렙 선교사 (GMP/한국개척선교회 소속)


광야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영적 각성과 다듬어짐의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모세의 인생 역정(人生歷程) 을 성경에서 대하고서 광야의 필요성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영적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잘 알다시피 모세는 공주에게 입양되어 40세가 되기까지 궁중에서 권력자의 반열에서 성장하고 권세를 누렸다. 그러다 자의 반 타의 반 도망자가 되어 자기의 기반인 영화로운 삶을 버리고 광야로 들어가게 된다. 성경에는 그 이후 모세가 광야에서 40 년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크리스천들은 모세의 이 광야 40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위대한 계획 안에서 모세를 등용하시어 사용하시기 위해 부여하신 과정이라 이해하고 있다. 로열 패밀리로 자란 모세의 경력과 바탕 그대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출애굽의 대 역사를 맡기실 수 없었기에 그를 광야로 밀어 넣으셔서 하나님의 커리큘럼에 따라 다듬으셨던 것이라고 이해한다. 모세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채 광야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광야 여인과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으며 가축을 치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 목자로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야에서의 수련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위대한 민족구원의 사명을 맡기셨을 때, 이를 순종한 모세는 광야를 졸업하여 영화를 누리는 것을 허락받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광야를 거쳐 또 다른 광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비록 모세는 광야를 이미 거쳤지만 이번엔 이스라엘 민족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광야였는지도 모른다. 지도자는 먼저 광야를 거쳐야만 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세에게는 광야 수업을 잘 받았는데도 칭찬과 상급은 커녕 또 광야로 들어가야 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정도의 인격이라면 애초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자로, 일꾼으로, 사명자로 택함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광야 40년 이전의 모세의 자질이 어쨌든 간에 하나님의 광야 수업을 통해 변화 받지 못할 인간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확신하기는 모세는 하나님의 기대 수준에 찰 만큼 광야에서 잘 다듬어진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불평이나 사명회피, 혹은 믿음 없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담대히 앞장서서 민족을 이끄는 대 장정의 임무를 수행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나 같은 사람을 외람되지만 모세에 비견하여 생각해 본다. 나의 거쳐온 인생의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사명의 현장으로 보내시어 지금의 나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은 세밀하게 다듬으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확연히 광야라 할 만한 역경이 있었는가 하면 광야라 하기엔 다소 쉬운 과정도 있었다. 어쨌든 모든 지난 날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한다면 망극하게도 나 같은 부족한 것을 요모조모, 이런 체험 저런 실패를 거치게 하시면서 다듬으셨으나 수준에 못 미치는 존재이지만 시대가 급박하니 파송을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광야 다음에 또 광야로 들어온 셈이다. 자의로 들어가고 싶어 광야에 들어가는 예는 흔치 않다. 그래서 기꺼이 광야로 들어가리라 누군가 고백한다면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는 자가 스스로 자원하여 들어갈 용기가 없으니 모세처럼 강권적으로라도 몰아넣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광야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그 수업의 과정을 거쳐야만이 진정한 생명력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광야를 묵상하며 작년에 글을 지어 보았다. 나로서는 광야 다음에 또 광야라 할지라도 광야가 없이는 바른 방향을 잡을 수 없는 본성을 알기 때문에 쓴 고백의 詩였다. 광야 수업을 받고 다시 광야로 들어와 거짓영에 속아 방황하는 종족과 무수한 심령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취할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무너지고 말 것들을 세우는 데 쓸데없는 땀과 물질을 소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사람을 세우고, 소망 없이 살아가는 심령들이 듣고 일어서 생명을 회복할 복음을 외치고 양육하는데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산을 넘어야 할 것이다. 언제든지 주님 명하시면 즉각 광야의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있도록 거추장스럽고 사치한 것들을 줄여가야 할 것이다.

 

광야의 역설 


딛고 서 있는 여기 높은 산꼭대기
교만과 이기심, 자기 자랑의 정상이라
눈들을 현혹하는 화려한 겉모습도
과시로 치장한 교만의 겉옷일 뿐이니
 

 

구차한 인생이 제 모습을 찾을 길은
녹아져서 새로 빚어질 용광로뿐이로다
낮아져야 살아남을 거친 광야뿐이로다

 

은혜 아니면 부지 못 할 황무한 땅에서는
자기애와 가식의 나 자신을 부정하고
말씀의 나침반으로라야 생존할 것이니

 

연단으로 다듬어져 낮아질 광야로
녹아져 순금으로 정제될 용광로로
사망의 길이기에 새 생명으로 거듭날

저 거친 광야로 기꺼이 들어가리라

 

[편집자 주 : 2021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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