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조진모] 국가의 위기, 하나님의 기회

복음뉴스 0 2022.04.15 18:12

 

조선 땅을 내게 주소서! - 초기 선교사 편지에 담긴 이야기 ②  국가의 위기, 하나님의 기회

글 : 조진모 목사 (전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국가의 위기 


19세기 조선은 어두운 역사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였던 청나라와 일본은 오래 전부터 서구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근대사회의 흐름에 편승하여 강대국의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은 변화를 거부하고 수구적 방향으로 나갔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쇄국정책의 중심인물로서 강력한 통상수교 거부 정책을 고집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사에 관심이 있는 성도들은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866년에 최초로 순교의 피를 흘리신 분입니다. 그 분이 타셨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 대동강까지 올라갔던 것은, 조선과의 통상을 성사시키려는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를 거절한 채 배를 침몰시키고 선원들을 처형한 결과, 1871년에 신미양요가 발생하여 미국과 조선간의 전투가 벌어진 것이죠.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통상 수교에 대한 거부 의지를 알리는 척화비를 국내 여러 곳에 세웠습니다. 그의 쇄국정책이 더욱 강화된 것이지요.

 

1873년, 대원군의 실각 이후 조선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1876년에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굳게 닫혀있던 문호가 외국에 개방된 것입니다. 그 결과, 조선은 근대사회를 향해 움직임이 시작되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근대화를 위한 개혁이 1882년 7월에 발생한 ‘임오군란으로 인해 장애에 부딪친 뒤 국가적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조선의 정치적 혼란을 계기로 청나라와 일본이 군대를 파견하며 무력을 행사하고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위기에 몰린 정치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지요.

 

그로부터 2년 후인 1884년 12월, 청나라가 조선의 자주독립을 침해하고 근대화정책이 저지되는 상황 속에서 ’갑신정변‘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와 결탁한 민씨 수구파를 제거하기 위해 면밀히 준비하여 일으킨 무장 정변이었습니다.

한국근대사의 흐름, 특히 근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적 위기가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놀라운 일을 통해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884년 9월에, 조선 최초 의사이자 선교사인 호래스 알렌이 외국인을 위한 의료 활동을 발판하는 복음 사역을 위해 도착한 것입니다.

 

알렌은 같은 해 6월, 자신을 파송한 미국북장로교 선교본부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포부를 다음과 같이 전하였습니다. “지금 조선에 있는 해외공사관과 세관원들에게 의사가 절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공적 의사가 있으면 저는 조선의 공직자들과 상류층에게 방해 받지 않고 오히려 의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 사역을 위해서도 견고한 토대를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조선에 가는 것이 허락된다면 저는 선교사로서 저의 임무에 신실할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겠지만, 파송을 받게 되는 경우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갑신정변


1884년 10월, 알렌이 조선에 도착한지 몇 주 지나 기록한 매우 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조선에서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해 낼 것입니다. 조선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날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이곳에 파송해서 이러한 영예를 부여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조선인들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변화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적 고백과 헌신을 매우 귀하게 여기셨을 것입니다.

 

알렌은 조선에 들어온 뒤 곧 공사관 의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국 공사였던 푸트 장군을 통해 고종에게 학원사역과 의료사역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였습니다. 비록 알렌은 열정적으로 사역에 임하길 원했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앞날이 불투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을 속국 수준으로 대하던 청나라에 의존하는 명성황후와 이에 맞서는 개화파 인사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수구적 태도를 지닌 정치인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개화 방식의 이견으로 인해 개화파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이들과 급진적인 방법을 주장하던 자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유럽 출신으로 조선의 최초 고문관으로 임명된 독일인 파울 묄렌도르프가 1882년 12월에 조선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의 외교 정책에 직접 참여하여 독일, 미국,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 등과 중요한 조약을 체결하는데 공헌했습니다. 그 당시 정치인들은 그가 청나라의 실세였던 리훙장의 권유로 조선에서의 사역을 선택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급진파 개화파 인사들에게 그는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실제적으로 개화정책에 관계하여 충돌이 반복되었습니다. 알렌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반드시 어느 한 편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사역을 펼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결국 1884년 12월 4일에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알렌이 사역을 시작한지 오직 3개 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급진적 개화파 정치인들이 식민지화를 시도하던 청나라의 정책에 저항하여 자주독립을 목적으로 시도한 정변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있었습니다. 청나라와 민씨 정권을 몰아내고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것이지요. 정변을 통해 혁신정부를 꿈꾸며 거사를 준비하던 자들은 일본 공사와 비밀 회담을 가졌습니다. 서둘러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일본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걸림돌로 여겨지는 주요 인물을 암살하려 한 것입니다.

결국 개화당의 시도는 3일 천하로 끝났습니다. 1,500명의 청군이 궁궐을 향해 진격하였고, 일본 공사는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속히 군대를 철수하고 일본으로 도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갑신정변은 적극적인 근대화 운동이었고 향후 민족운동의 기반이 되었지만, 동시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국가적 위기를 반복하여 경험해야했던 약소국으로서의 쓰라린 역사적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회


우리는 ’갑신정변‘을 국가적 위기라는 관점을 넘어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열정에 불타던 알렌 선교사에게 사역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명확하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한 나라의 국가적 어려움을 자신의 기회로 삼으신 것 입니다.

 

갑신정변으로 인해 알렌은 민씨 정권의 주요 정치인이었던 민영익과 친분관계를 맺게 됩니다. 사건 당일 우정국 밖에서 ’불이야!‘라 는 소리를 외치자 참석했던 사람들이 놀라서 정신없이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바로 이때 민영익이 자객에 의해 생명을 잃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온건한 개화파의 실세였던 민영익을 아예 없애려고 한 것이지요. 묄렌도르프 공사가 민영익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다수의 한의들이 달려와 치료를 시작했지만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칼이 몸 여러 곳에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알렌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지혈이 되지 않아 위급한 상황을 맞고 있던 민영익을 만나게 됩니다. 장시간에 걸쳐 정성을 다해 지혈과 봉합수술을 실행했습니다. 결국 그의 생명은 유지되었습니다.

 

1884년 12월 8일, 알렌은 다음과 같은 편지 글을 남겼습니다. “12월 5일 목요일 저녁 외국인 관리들에게 베푸는 저녁 파티 직후에 그 일곱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 가장 저명한 관리는 아직 살아 있고 회복될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는 끔찍하게 난도당했습니다. 이 분은 우리 미국 정부가 높이 평가해서 미국 전함 트렌튼호에 태워 전 세계를 다니게 헀던 특명전권 공사 민영익입니다. 저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도록 소환되어 지금까지 계속 돌보고 있습니다.”

 

결국 민영익은 자신의 생명을 건져준 은인에게 호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민영익은 국왕의 조카였기에 향후 조선에서의 그의 입지가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께서 하신 일입니다. 국가적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시편 66:7)” 하나님은 한결같은 분이십 니다. 국가적 위기는 물론 여러분과 제가 경험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신실한 왕이자 아버지이십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3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0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72 [한삼현] ‘진리’(the truth)가 무엇입니까? 복음뉴스 2022.05.20
271 [이선경] 찬양의 개정판은 어떻게 써야 할까? 복음뉴스 2022.05.20
270 [이민철] 성경을 변호하지 않겠는가?(Shall We Defend The Bible?) 복음뉴스 2022.05.20
269 [유재도] 뉴저지 실버 훈련 후 나의 변화는? 복음뉴스 2022.05.20
268 [김경수] 분노를 치유하라 복음뉴스 2022.05.20
267 [조희창] 강의를 갔다가 들었던 참 기억에 남는 이야기 복음뉴스 2022.05.20
266 [정관호] 그리스도인, 어떻게 되는가? 복음뉴스 2022.05.20
265 [오종민] 가정의 소중함 복음뉴스 2022.05.20
264 [송호민] 마음 속의 우상을 버려라 복음뉴스 2022.05.20
263 [박시훈]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치자 복음뉴스 2022.05.20
262 [김혜영] 내 사랑으로 가능할까? 복음뉴스 2022.05.20
261 [김현기] 디지털 VS 아날로그 음향장비 복음뉴스 2022.05.20
260 [김용복] 목을 걸고 복음뉴스 2022.05.20
259 [문갈렙] 매화나무 아래서 복음뉴스 2022.05.20
258 [박인혜] 안개꽃 복음뉴스 2022.05.20
257 [배성현] 아론의 싹난 지팡이 복음뉴스 2022.05.20
256 [양희선] 산다는 것 복음뉴스 2022.05.20
255 [김현기] 프로젝터 VS LED 복음뉴스 2022.04.15
254 [문갈렙] 유적이 된 감옥 복음뉴스 2022.04.15
253 [김용복] 매 맞고 간 교회 복음뉴스 2022.04.15
252 [조진모] 복음 밀수꾼의 우연과 필연 복음뉴스 2022.04.15
251 [양춘길]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복음뉴스 2022.04.15
250 [이선경) 거룩한 저항 복음뉴스 2022.04.15
249 [강유남] 내 안에 성령님이 사는 법 복음뉴스 2022.04.15
248 [박인혜] 믿음이 부활하게 하소서 복음뉴스 2022.04.15
247 [한준희] 알고 있어야 할 하나님 나라 (3) 복음뉴스 2022.04.15
246 [배성현] 저녁 노늘 이중창 복음뉴스 2022.04.15
245 [이윤석] 율법의 요구와 넘치는 은혜 댓글+1 복음뉴스 2022.04.15
244 [양희선] 구원에 가까이 가는 한가지 길 복음뉴스 2022.04.15
243 [김경수] 열등의식의 치유 복음뉴스 2022.04.1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