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조원태] 갈렙 형에게

복음뉴스 0 2022.08.13 09:28

제목 : 갈렙 형에게

: 조원태 목사 (뉴욕우리교회)

 

진작 갈렙 형에게 글을 쓸 참이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미뤄둔 채 몇 개월이 흘렀어요. 버릇없는 낯선 호칭일 수 있지만, 형이나 저나 하나님의 아들, 결국 형제라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갈렙 형의 익숙한 틀을 벗어나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형이라 부르게 되었네요.

 

갈렙 형은 오래 전부터 제 마음의 스타였어요. 결정적 계기가 땅 분배할 때 형의 모습이지요. 광야 40년을 온 몸으로 지나 7년 가나안 전쟁을 치른 백전노장 갈렙 형이 평생 동지였던 여호수아 형 앞에 섰을 때였어요. 형은 불쑥 45년 전 한 에피소드를 꺼내셨지요.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14:7) 형이 40세였을 때, 여호수아 형과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했고, 갈렙 형은 캄캄한 영적 정전 상태에서 불을 밝히셨지요.

 

덕분에 40세였던 형은 모세 형에게 약속을 받았고요.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14:9) 그 날에 받은 약속은 마냥 상 받는 분위기는 아니셨을 거예요.

 

형의 보고는 좌절되었고, 대중들이 형을 향해 돌을 던지려던 찰나에 모세 형이 이런 약속을 스피커에 대고 했을 리 만무하잖아요. 그런 좌절된 상황에서 받은 약속, 떳떳하게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한 약속을 갈렙 형은 45년 동안이나 잊지 않고 기억해 내신 거잖아요.

 

85세의 백전노장 형이 그 기억을 잊지 않고 말할 때 전율이 흘렀어요.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 오세로되(14:10)

 

정탐했던 때는 출애굽 한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고, 그 뒤로 광야생활 38, 가나안 정복전쟁 7년 도합 45년이나 흘렀잖아요. 형은 85세가 되셨고요. 38년 사막과 7년 전쟁에서 갈렙 형은 목숨만 생존하시지 않고, 마음에 있는 약속과 꿈도 죽지 않으셨어요.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14:11) 갈렙 형은 45년 전과 45년 후를 비교하셨지요? 45일도 변하는 판국에 무엇이 45년간 형의 변함없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묻고 싶던 질문이었어요. 성서 앞에서 중얼대며 몇 번이나 저는 되물었지요. 제가 사는 시대는 형과 3400년의 시차가 있어요. 갈렙 형만큼은 아니지만, 세계가 2년 넘게 바이러스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왔지요. 과연, 다 바꿔버린 2년 전후로 우리는 변함없는 마음일까요?

제가 사는 미국의 어느 노인전문기관에서 노인의 3가지 특징을 이렇게 말했어요. “최근 일을 잘 잊는다. 새 일을 피한다. 사회변화를 원치 않는다그런데 85세 형은 45년 전의 약속을 잊지 않았고, 새 도전에 망설이지 않았어요. 40세보다 더 강한 믿음이 85세에도 있으셨지요.

 

형은 45년 시차를 두고 변치 않는 소원을 말하셨어요.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14:12) 40세의 그날에 밟던 산지를 지금 85세도 여전히 밟고 싶은 형의 열정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형의 묵직한 음성이 제 마음을 쿵 울려요.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14:1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형은 청년에도 노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셨네요. 부정적인 여론도, 강한 상대도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형에게 흔들리지 않는 승리였던 거고요.

 

형이 요청한 산지는 45년 전에 형이 정탐했던 남부산악 지방에서 가장 견고한 헤브론이지요. 해발 960m인 산지는 험준할 뿐 아니라 형이 요청했을 당시에 아직 미 점령 지역이었어요. 거주한 거인족들은 거대한 성읍을 쌓고 험준한 지형을 능숙하게 이용한 게릴라였지요.

 

그래서 45년 전에도, 45년 후에도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못했고요. 하지만 백발을 휘날리는 형은 세월을 타지 않으셨어요. 하나님 약속이 형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은 형의 믿음 안에서 이미 현실이 되었지요. 하나님과 동행한 45년 형의 걸음을 흠모해요.

 

형은 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셨고, 지분을 요구할 마땅한 명분도 충분했지요. 그런데 형은 한사코 45년 전 정탐했던 헤브론 산지, 남들이 꺼려 미 점령지역으로 남은 헤브론 산지를 요청하셨어요. 개인의 욕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자리 잡을 수 없는 형의 요청이었지요.

 

이후에 헤브론이 도피성으로 선택되었을 때 기꺼이 그 도시를 내주고 형은 그 도시 주변의 들에 거주하셨지요. 내가 수고해 점령한 도시였어도, 내가 밟는 땅을 차지할 약조를 받았을지라도, 형은 당연한 권리주장보다 백성을 위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넉넉한 분이셨어요.

 

멋쟁이 갈렙 형~ 형처럼 살고 싶어요. 형은 본래 이방 출신이셨다면서요?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14:6) 요즘 전문가들은 출애굽 무리에 섞인 수많은 잡족(12:38)에 형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 추정해요. 그니스 족속은 에돔 땅에 거한 이방 족속이네요.

 

이방 족속이면서도 형은 12지파의 지도자가 될 정도로 하나님과 민족을 사랑하셨던 거고요. 형은 여호수아 형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평생 킹 메이커 역할만 했는데도 형이 낯빛 붉혔다는 이야기를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소수인종이면서 굴하지 않고 앞서서 헌신하셨네요.

 

갈릴리 예수님도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네요. 갈렙 형이 요청한 산지는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을 가리키는 이정표 같아요. 3400년 지난 우리의 헤브론 산지는 어디일까요? 어떤 난관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산지는 무엇일까요? 형처럼 거룩한 열정이 식지 않고 싶어요.

성서는 기다리는 분들로 채워졌어요. 아브라함은 25년 기다려 이삭을 얻었고, 요셉은 13년을 기다려 이집트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야곱은 20년을 기다려 라헬을 얻었어요. 그런데 갈렙 형은 45년이나 기다려 헤브론을 얻으셨네요. 저도 형처럼 한결같이 기다리고 싶어요.

 

형이 걷던 중동 사막의 열기처럼 저는 뜨거운 한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한여름 열기보다 더 뜨거웠던 형의 열정과 사막의 열기를 식히고도 남았을 형의 양보가 넘 고마워요. 이 산지를 주소서 외칠 용기로 역사의 마중물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이만 총총~

 

뉴욕우리교회 목양터에서하나님의 가족인 아우 조원태 드림

 

조원태의 러브레터성서의 인물들에게 쓰는 러브레터 시리즈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그분들께 편지를 쓰면서 신앙과 신학적 대화를 시도하려고 합니다편지가 주는 자유로움이 얄팍한 인식의 껍데기를 벗기고그분들이 받았던 생살처럼 보드라운 메시지의 따뜻한 위력을 만나 보길 기대합니다성령님께 기도하고 성서를 읽으며 만나게 될 소중한 거인들을 함께 만나는 장에 초대합니다.

 

* 2022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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