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체험 -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글 : 김용복 목사
아버지는 마흔 넷에 막내 아들인 나를 낳으셨다. 예순 여덟에 나를 장가 들였다. 두 주 전, 나도 같은 나이에 막내 아들을 장가 들였다. 몰랐던 그 때 아버지 가슴속이 내 속을 적시었다.
아버지는 한번도 나를 훈계하지 않았다. 야단 친 적도 없다. 화를 낸 적도 없다. 욕을 한 적도, 매를 때린 적도 없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철봉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져 기브스를 했다. 그래 심심해 하는 나를 데리고 월미도 앞 바닷가로 가셨다. (그 때는 지금과 달리, 고랑 많은 너른 갯벌 바닷가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우리는 망둥이 낚시를 했다. 내 팔 기브스가 바닷물에 젖어, 뜯어내고 다시 해야 했다. 그 아버지가 내 속에 가득했다.
아버지가 오십 대 중 후반 소질 많지 않던 사업이 어려워져, 우리는 집을 잃고 남의 집 세를 살게 되었다. 어머니가 장사 나가고, 아버지가 부엌에서 밥을 해주던 날들이 있었다. 그 얼굴에서도 나는 근심을 보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어려운 형편에 자랐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한다. 나는 근심도, 꼭 잘 살아 보겠다는 결단도 없었다. 아버지의 근거 없는 온유와 평강은 그대로 내 살이 되었고, 내 마음이 되었다.
이제는 내 마음에 짠한 웬지 모를 아스라함이 아버지 가슴속에도 있었구나 알게 된다. 그가 빈 골목을 오래 바라 보던 그 눈빛의 얼굴이 보고 싶다. 아버지 몸의 온도는 내 몸의 온도와 같구나, 정말 똑 같구나, 왜 이제 알아서, 아버지에게 그 말 한 마디를 못했을까, 아프다, 아쉽다, 미안하다. 아버지는 말없이 말했는데, 나는 알아 듣지를 못했구나. 아버지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다닐 때, 그 때 이미 돌아 가신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글씨는 눈물에 녹아 내렸지만, 처음 말했다. “ 아버지, 사랑해요! 미안해요, 예수믿으라고 말 못해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그 편지를 내 아들들에게 부쳤다.
그 아버지를 만지는 감촉은 하나님을 만지는 감촉과 똑 같다. 내 아버지의 체온이 내 하나님의 체온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 쉬운 분이다. 하나님도 나에겐 하나도 어렵지 않은 분이다. 아버지처럼, 하나님도 나에게 소리 내어 시키거나 야단치지 않으신다. 내가 못 듣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내 아버지다. 그래도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다. 내가 홀로 있을 때, 홀로 가는 줄 알았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오셨을 것이다. 나도 내 아들들 모를 때도 나는 그들과 같이 있으니, 아버지를 꼭 닮은 모양이다. 내 하나님이 나를 꼭 쫓아다니시는 것처럼.
나도 아들들에게 훈계도, 야단도, 지시도, 욕도, 매도 댄 적이 없다. 좋는 것 만은 아니다. 영 육과 훈련이 부족한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런 데 그렇게 안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의 하나님은 아직도 나를 달래고 권하고 기르고 훈련하신다. 나는 아직도 바로 바로 순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구 같은 아버지, 친구 같은 하나님이기에 나는 그 분과 아무 가림없이 친하다. 그 분은 나와 가를래야 가를 수 없다. 그 분이 살아 계시므로 나도 살아있다. 그 분이 영원하시면, 자식인 나도 영원하다. 아버지가 영원한데, 자식이 영원하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그 분이 나를 영원하기를 바라시기에.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버지도 내가 보고 싶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위의 글은 2021년 7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2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