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체험 - 아버지의 발
글 : 김용복 목사 (City Fellowship Mission)
그 때 아버지는 80세가 넘으셨다. 북가좌동 산 언덕바지 오래된 연립주택 큰 형님 댁에 어머니와 함께 사시고 계셨다. 거동은 하시지만 멀리 걷지는 못하셔서, 집 근처 골목길만 조금씩 마실 다니시는 형편이었다.
나는 30대 후반이었다. 종합상사 퇴직하고, 개인 무역사업을 하느라 바삐 살 때였다. 늦게 난 아들까지 세 아들도 키우며 강남에 살고 있었다. 매 주말은 아니더라도, 최소 2주에 한번은 부모님을 찾아 뵈러 큰 형님집에 다녔다. 좋 아하시는 홍시나 소주 한 병, 용돈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과 함께 한 나절 지내다 집에 오곤 했다. 평소에는 세상속에 장사하느라, 제대로 부모님을 챙기며 많이 마음을 쏟지는 못했지만, 의례적인 아들 노릇은 하고 있었다.
그 날도 우리 식구 모두 아버님을 찾아 뵈러 갔었다. 부모님 방 아랫목에 아버지는 앉아 계셨다. 다른 식구들 모두 윗목에서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윗목에 있다가 아버지하고 이야기라도 할까 해서 아랫목으로 갔다. 이야기 좀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맨발이 보였다. 그런데 그 발이 좀 거믓거믓했다. 좀 자세히 보니, 몸 거동이 불편 하시니, 혼자 잘 씻으시지 못해서 때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 줄을 몰랐던 나 자신이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물을 데워 세숫대야에 담아 아버지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아랫목에서 윗목을 향해 앉으셨고, 나는 그 아버지 앞에 앉아 아버지 발을 물에 담가 문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안되었지만, 발이 따스한 물에 불어가자, 때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나올 줄 알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계속 때가 불어져 씻겨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원해하시는 것 같았다. 내 손은 씻기를 계속하고 있었고, 내 눈은 씻기는 아버지 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이 내 손등에, 아버지 발등에, 씻기는 물위에 계속 떨어졌다. 아버지에게도, 내 등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윗목의 식구들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울음을 목구멍으로 다시 삼켜 넣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심했던 나때문에, 사랑없는 내 죄가 아버지 발에 때로 있었다. 씻겨 나오는 검은 때는 아버지 때가 아니라, 내 죄의 때였다. 아무도 내가 소리 죽이고 우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동안 그렇게 씻기던 아버지 발을 수건으로 마르게 닦아 드렸다.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발을 씻긴 날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한 번 씻기셨다. 깨끗하신 예수님이 깨끗하지 못한 제자들을 씻기신 것으로 이해했었다.
아버지 발을 씻긴 뒤 십여 년 뒤에 나는 알았다.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물로 씻긴 것이 아니라, 눈물로 씻으셨구나! 제자들의 죄를 씻길 때 예수님은 자기 죄 때문인 것 같아 우셨구나!
[편집자 주 : 위의 글은 2021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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