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설교

 

[원도연] 진정한 대각성

복음뉴스 0 2020.12.31 20:50

뉴저지장로연합회(회장 정일권 장로)는 12월 29일(화) 오후 8시에 제3회 영적대각성기도회를 가졌다. 주님의은혜교회(담임 최준호 목사)에서 개최된 기도회의 설교는 원도연 목사(시온제일교회)가 맡았다.

 

원도연 목사는 육귀철 장로가 봉독한 이사야 1장 1-19절을 본문으로 "진정한 대각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원 목사는 "지금의 환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더불어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목사는 "기도와 순종은 하나님 능력 나타남의 두 날개와 같다. 기도가 중요하지만, 기도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응답은 기도한 우리들의 순종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도했다면 순종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주님 앞에 완전한 기도이다"

 

원 목사는 또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세상에 힘과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권세가 교회의 권세를 누를 만큼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 된 우리가 주님 만났을 때의 첫 마음을 잃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헌물이 정말 너무나 귀하고 귀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저 헌물 드리는 것으로 '나는 내 맡은 바 모든 것을 다 했다'라고 생각하고 정말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과 부르심과 명령을 외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모습은 될 수 없음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바른 기도와 순종을 강조하는 설교를 했다.  

 

다음은 원도연 목사의 설교 전문이다.

 

본문 : 이사야 1:1-20

제목 : 진정한 대각성

 

뉴저지 장로회 주체 영적 대각성 집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환영 합니다.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이 세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전염병의 창궐로 인하여 우리 지역 사회 뿐 만 아니라,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교회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경제적인 타격도 타격이지만, 특별히 믿음의 성도들에게 찾아온 영적인 타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크고 우리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 활력은 사라졌고, 그렇게 친밀했던 관계는 점점 어색해 지고 있습니다.

교회 곳곳에서 들렸던 기도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어떤 곳은 아예 그 소리 조차도 나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이 때에 주정부에서 교회는 폐쇄 하라는 명령은 떨어지지 않아서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환난 중에 하나님께 올려 드릴 감사의 제목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영육으로 큰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모여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놀랍게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을 계속해서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위로와 힘과 소망을 부어 주시기 때문 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다 기도의 용사들 이시기 때문에 기도가 주는 유익이 얼마나 큰지를 이미 다 경험해 보셔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 마음이 상하고 그로 인하여 삶의 활력도 점점 약해 질 때 가만히 조용한 장소에 나아가 “주여”라고 주님 이름 부르고 내 마음의 고통과 환경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아뢰면 생각지도 못하는 신비한 역사로 어느 순간 “그래 다시 한 번 힘을 내 보자. 그래 다시 한 번 시작 해 보자” 라는 소망의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부어 주시는 ‘생명의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것 이지요.

지금의 큰 환란 속에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된 여러분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일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기도의 중요성과 함께, 지금의 환난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일 입니다. 

기도와 순종은 하나님 능력 나타남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두 날개가 함께 날개짓 하게 될 때 성도와 교회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이지요.

기도가 중요하지만, 기도만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은 기도한 우리들의 순종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 입니다.

기도 했다면 순종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 완전한 기도인 것 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왜 위대한 기도 입니까? 

“내 뜻데로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 만 하시고 끝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아버지 원대로 하소서”라고 기도 한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마가복음 14장 41-42절 입니다. 

“(41) 세번 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기도만 하시고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순종 하셨던 것 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정말 가기 싫은 그 길을 걷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용기 내셔서 정죄가 있는 길, 육체의 고난이 있는 길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는 그 길로 자신의 한 발을 앞으로 내 딛으시는 순종을 하셨던 것 입니다.

바로 이 순종 때문에 기도가 기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하시는 구원의 열매가 맺어졌던 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모임에 오신 저와 여러분들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기도하는 만큼 순종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우리는 지금 뉴저지 영적인 대각성을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각성을 위한 기도를 올려 드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가 하는 기도에 합당하게 주님 앞에 대각성을 위한 순종의 행위들을 행하고 계십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기도하는 많은 분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이 있다면 기도는 하는데 남이 변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이 변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 환경이 변하여 나로 그 일 감당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도 이런 기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 제가 먼저 변하게 하소서. 하나님 제가 먼저 순종하여 환경이 변하게 하소서”가 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모세도, 이사야도 다 하나님 만난 사람들 입니다. 

이 사람들 모두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광스런 교제 후에 그들의 다음 행동은 순종 이었습니다.

모세는 그토록 가기 싫었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고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낼꼬?”라는 주의 음성에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며 열방을 향한 선지자로 살기로 결단 합니다.

따라서 각성을 위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만큼이나,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뉴저지의 영적 대각성을 위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내가 어떻게 각성해야 하는가?”가 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뉴저지의 영적 회복을 위해 무엇을 각성하고 무엇을 순종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을 점점 만홀히 여기는 것을 회개하고, 이제는 다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개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 갔도다”

 

하나님게서 온 우주 만물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고발하고 계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지난 은혜를 잊어 버리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 멀리 떠났다고 고발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찌 이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 입니까? 

그들이 영적으로 교만해 져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잃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 입니다.

 

정말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를 위시한 교역자나 또는 오랜 신앙 경륜을 가지신 성도님들이 가질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나 하나님 좀 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 하시는지 잘 안다. 

내가 말씀도 어느 정도 다 꽤고 있다. 그런건 다 경험해 봐서 어떻게 할 지 다 알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아니요, 저 그럴 리가 없는데요”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봐주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런 교만함에 빠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1) 예배 드리를 때에도 전심으로 찬양하고 기도 하고 있습니까? 

(2) 설교 들을 때에도 “응.. 목사님이 그 다음에 무슨 말씀 하실 지 난 다 알아” 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는 아니셨습니까?

(3) 기도 하지 않고 지낼 때에도 “응.. 나 예전에 많이 기도해서 괜찮고 또 기도 많이 해서 이제는 기도 안 해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지 잘 알아”

(4) “이정도면 하나님께서도 봐 주시겠지”하면서 살짝 살짝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랬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해 졌고, 하나님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기 시작 한 것 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을 좀 안다는 나의 착각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가벼히 여긴 것에 대해 회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기 저기에서 안타깝게 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와 사건의 주체가 되시는 분들 중 대부분이 목사를 위시한 교회 중직들 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만 듭니다.

교회의 목사를 위시한 중직들은 교회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당사자인데, 어떻게 하다가 문제의 원인이 되 버리고 만 것 일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입니다. 

목사인 저도, 죄송하지만 교회의 중직이신 여러분들이 하나님 두려워 하지 않고 교만해 졌기 때문 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우리의 이 교만함을 주 앞에 회개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시 주님 처음 만났을 첫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감격과 두려움으로 만났던 그 주님을 향한 우리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위대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칭찬도 하셨던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있는 치명적인 죄를 고발하십니다.

그게 무엇 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에베소 교회가 수고, 인내, 용납, 진리를 수호함에 있어서는 잘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 입니다.

계시록 2장 4절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리라”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처음 하나님 만났을 때의 감격과 그 분을 향한 두려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을 회복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까?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늘 날 우리 교회가 세상에 힘과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권세가 교회의 권세를 누를 만큼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교회 된 우리가 주님 만났을 때의 첫 마음을 잃어 버렸기 때문 일 것 입니다.

선교의 본고장이요, 우리 대한민국에 복음을 전해 주었던 이 미국이 이제는 한국교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를 배우기 위해 큰 신학교 총장과 교수들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한국의 영성을 배우곤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미국 목사님들과 대화 하더라도 한국교회가 이 미국 땅을 영적을 지탱해 주는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말이 너무나 무색하게 드릴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문제의 소리가 들리고 성도는 교회를 떠나고, 교회 안에서 다툼과 반목의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민자의 어려움 환경 때문이라구요? 코로나 펜데믹 때문 이라구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한 두려운 마음을 잃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이 부분을 놓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1) “나 좀 안다”라는 마음으로 주일예배 설교를 가볍게 여기고 판단 했던 것 회개해야 합니다.

(2) “나 좀 익숙하다”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 함부로 안다고 말하고,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하지 않고 우리 생각을 마치 하나님 뜻 처럼 말했던 것 회개해야 합니다.

(3) “나 정도 면 되지 않나”라고 착각하며 살짝 살짝 하나님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면서 스스로 면죄부 주며 나아갔던 것 정말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정말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고 하나님 만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가 해야 할 각성이 무엇인지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길 원합니다. 

그것은 물질 만 드리고 하나님께 진심과 순종을 드리지 않는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려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 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 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빈손 들고 나오지 않고, 반드시 제물을 들고 나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은, 그 제물을 가지고 죄 용서함을 받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바쳐 드려야 했는데요.

어느날 부터 하나님께서 그 제물 받는 것을 싫어 하시기 시작 하셨다는 것 입니다.

이유가 무엇 일까요? 

 

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은 들고 오는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그 분을 경외하는 마음은 없이 제물 만 들고 오더라는 것 입니다.

한 마디로 참 된 제물을 가져 와야 하는데 헛 된 제물을 가져 온 것 이지요.

 

우리도 하나님께 매 주일 마다 예배 드리러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준비하여 옵니다.

제가 한국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미국에 와서 여러분들이 하루 하루 얼마나 고생하면서 물질을 버는지를 알게 된 부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헌물이 얼마나 귀한 헌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예배 시간에 봉헌 기도를 하면서 “주여, 이 헌물이 절대 헛 된 곳에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 살리는데 사용되게 하소서”라고 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귀한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들께 마음이 아플 수도 있지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기 위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헌물 드리는 것으로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향한 모든 본분을 다 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굉장히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매우 죄송한 마음 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너희는 과연 내게 참 된 제물을 가져 오는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마가복음 7장 11-13절에서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드려 유익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며”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물질을 아낌 없이 바쳐 드렸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굉장히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심지어는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말이지요.

아니, 하나님께 귀한 물질을 바쳐 드렸는데 왜 그것을 ‘말씀을 폐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물질을 드려야 하지만 부모를 먼저 공경하고 섬기는 일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질 드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새벽별 보고 밤 별 보고 들어오며 

입에 단내 나도록 노동하고 들어와서 모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예물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고 해서 그것자체가 우리가 마땅히 성도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을 가려 주거나, 보상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목사님들과 교제를 하고 교회의 사정을 들어 보면 이 어려운 시기에도 성도님들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헌물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말씀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요즘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 입니다. 

어느 한 큰 교회의 목사님의 입에서 “우리 교회를 섬기는 일꾼은 20~3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그 분들이 우리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렇게 많은 성도가 교회를 출석하는데 정말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1/100 도 안 된다니”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사울왕에게 사무엘을 통해 뭐라고 책망하셨습니까? 

사무엘상 15장 22절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기도의 자리에 오신 귀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헌물생활도 하시지만,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세우는 일에 순종하며 살고 계십니까?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 많은 교회의 관심이 ‘지금 우리에게 재정이 얼마나 있느냐’에 있습니다.

네, 지금 이 순간에 교회가 재정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많은 교회가 매 달 내야 하는 렌트와 교역자 사례비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재정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겠지만 그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코로나 펜데믹의 중요한 순간에도 우리가 주께서 맡기신 사명과 오늘 행하라고 명하신 그 일에 우리가 순종하고 있는가”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우리 마음을 쏟아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드리시는 헌물 정말 너무나 귀하고 귀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저 헌물 드리는 것으로 “나는 내 맡은 바 모든 것을 다 했다” 라고 생각하고 정말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과 부르심과 명령을 외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모습은 될 수 없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이 펜데믹의 위기로 뉴저지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는 이 때에

이렇게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은 진실로 하나님께 크게 기쁨이 되는 일 인 줄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뉴저지 대각성 기도회는 한 달에 한 번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남은 30일은 우리가 기도한 것에 대한 순종으로 채워야 함을 말하는 것 입니다.

 

많은 기도와 열렬한 기도가 우리의 영혼에 힘과 위로를 공급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을 받쳐주는 우리의 순종의 행위가 없다면

그 기도는 우리 자신에게는 유익할 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와, 우리 이웃 지역과 사회와 나라와 열방에는 큰 영향력이 임하지 않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는 자가 순종으로 행할 때 나타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우리는 이제 기도를 갈망하고 사모하는 만큼 우리의 삶에서 순종하고 행동하는 자리 까지 나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무엇을 각성하고 순종해야 합니까? 

 

첫 째 ) 하나님이 익숙해 져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 사랑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을 편하게 될 때 우리는 함께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촛대 마져도 잃어 버리게 될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 째 )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 모든 것을 다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며, 이제는 물질 뿐 만 아니라 몸으로 하는 순종과 섬김으로 하나님께 참 제물을 드리는 순종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예수님도 기도만 하시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이루어져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 십자가를 메는 수고로움의 헌신의 자리로 나아가셨던 것을 기억하시며

오늘도 우리 자신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쓰시도록 하나님의 도구로 내어 드릴 때, 저와 여러분들의 순종과 섬김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했던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 완성이 이루어 지게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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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전희수] 하나님 마음이 있는 곳에 열매가 있다 복음뉴스 2022.08.03
167 [임현수] 통일보다 시급한 비상사태 복음뉴스 2022.08.02
166 [임현수] 고난이 축복이 되는 이유 복음뉴스 2022.08.01
165 [김정호] 노아가 아니라 아브라함 복음뉴스 2022.07.25
164 [이만호] 천국의 이력서 복음뉴스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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