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은혜를 막는 방해요소입니다.

김경열 목사 0 2020.03.29 17:16

본문말씀 : 엡4:29-32 

제   목 : 은혜를 막는 방해요소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Let no corrupt communication proceed out of your mouth, but that which is good to the use of edifying, that it may minister grace unto the hearers, (Epheslans 4:29) 

 

세상에는 보이는 존재들과, 실존하나 보이지 않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성경은 영적존재 라고 합니다.

 

성경은 영적존재를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들의 영혼으로 구분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물체

이나 전자 현미경과 같은 것으로 보면 보여 집니다.

 

마귀는 영적존재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본래 마귀는 하나님 나라에서 찬양하는 일을 맡았던 천사 루시엘에서 기원(紀元) 합니다.

 

그런 천사가 교만해져‘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가장 구름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14:13~14)

 

이 루시엘이 하나님께 대적하고 타락하면서 루시퍼가 되어 이 땅으로 쫓겨났고 천사에서 사탄마귀가 되었습니다.

 

마귀의 존재를 너 아침에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14:12)

 

하나님을 배반하고 직무를 이탈해서 공중으로 쫓겨나 공중권세를 잡고(유1:6, 엡2:2) 타락한 천사로 이 땅에 떨어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창3:1) 에덴에서 쫓겨나게 했습니다,(창3:23) 

 

하나님 대신 자기를 경배케 함으로 아담이후 모든 인류는 그 죄가 혈통으로 내려와 마귀의 조정 하에 놓이게 됩니다. (밷후2:4)

 

마귀사탄을 헬라적 표현으로 (헬)‘디아볼로’라고 합니다.

 

디아폴로는 합성어로 디아/볼로‘쇄기를 박는다.’란 뜻입니다. 

디아폴로는 이간시키는 자, 참소자 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 사단은 파괴자로 이간하고 거짓말로 비교의식으로 싸우고, 무너뜨리고, 갈라지게 하는 자로 이 들이 역사하는 곳에는 분열과 비판, 찢어지고 갈라지는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빼앗고, 건강을 헤치고 이간시키는 등 하나님 나라 건설에 방해공작을 합니다.

 

마귀, 사단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상을 보면 그들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영적세계를 모르고 악한 영의 역사를 모르면, 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분별이 가능합니다.

마귀를 물리칠 능력도 인간에게는 없지만 예수의 권세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사탄 마귀들이 쫓겨납니다.

오직 예수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탄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신앙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탄은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에게 찾아와 악한 

꾀로 넘어지게 하고 교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큰 용이 내어 쫒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에 내어 쫒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쫒기니라.((계12:9)

 

그들은 마귀, 사탄 미혹의 영(요일4:6), 마귀와 그의 사자(마23:41)

귀신 등의 이름으로 조직을 가지고 악한 일을 하는 군단들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깨어서 마귀사탄을 대적하고, 시험받아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끝까지 방해 했으며, 그 후에 인간들을 괴롭혔고, 마지막으로 지옥으로 끌고 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살인, 자살, 간음, 불면증, 정신병, 분쟁, 타락 등)

 

이들이 하는 일은 교활하고 간교해서, 모르면 당하면서도 모릅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것을 잘 알아야 영적생활에 승리하게 됩니다.

 

소통이 안 되면 불통이라고 하는데 답답하고 차질이 일어납니다.

바벨탑 사건에서도 언어를 혼란케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창11:)

 

형통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방송도 채널이나 다이얼이 맞아야 방송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창39:2)

하나님이 감옥에 있는 요셉과 함께 하시니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고 감옥에 갔기 때문에,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혈관이 막히면 건강을 해치고, 죽습니다.

혈액이 불통하면 뇌출혈, 뇌경색, 동맥경화 심장혈관 같은 질병이 생깁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데 절대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굴곡도 있을 수 있고, 언제 소용돌이 파도가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늘 다니시던 갈릴리 바다에도 풍랑이 일어나듯이, 가끔 돌풍이 불어오기도 하고, 복병처럼 숨어있는 장애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들어가기 까지는 광야 길에서 수없는 

장애물을 해결했듯이, 우리 인생도 광야를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홍해가 놓여 있고, 여리고성을 점령해야 하고,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이런 장애물 앞에서 요구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장애물을 정면 돌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장애물이 없는 승리가 아니라, 장애물을 뛰어넘는 승리입니다.

성도는 장애물을 만나도 동굴이 아니라, 터널을 지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끝이 오지만 터널은 인내하고 지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히12:2)

 

우리의 생활 속에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물질관계, 하나님 관계에서 

오는 장애물 등 수없이 많습니다.

 

문제가 없는 곳은 공동묘지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장애물들은 마귀의 속성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살면서도 많은 문제들이 사람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수평적관계가 형통할 때, 하나님과의 수직적관계도 열립니다.

 

오늘 말씀은 불신자들을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살고 있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바울을 통해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무엇보다 더러운 말이 은혜를 가로막는다. 고 했습니다. (29절)

 

 1) 말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말은 굉장한 위력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말인 동시에, 반면에 가장 상처를 주는 것도 말입니다. 

 

바울도 에베소 성도들에게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말이란 무엇입니까?

 

(1) 유익되지 않는 말입니다, (2) 은혜를 가로막는 말입니다. 

(3)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4) 남을 정죄하는 말입니다. 

(5) 절망에 빠트리는 말이요. (6) 냄새를 풍기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말조심하는 일입니다.

 

인생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생각을 바꾸기는 쉽고, 운명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말을 바꾸기는 쉽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말을 바꿀 때에 생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말에는 각 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이 뇌에 입력이 되고, 뇌는 생각을 움직이고, 생각은 

행동을 움직이는 근원이 됩니다. 

 

결국 언어가 바뀔 때, 자신도 모르게 행동에서 변화가 나타납니다.

언어는 우리 인생을 이끌고 갑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더러운 말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마귀에게 속고 있으며, 은혜를 가로 막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2)  성도는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29절)

 

‘덕’이란 집을 세우는 기둥처럼 사람을 세워주는 말입니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덕은 자존감과 인격을 세워주는 기둥과 같습니다.

 

반면에, 덕을 무너트리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약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성적 존재이며, 인격이 있습니다. 

자존심이나 약점을 건드리면 가장 큰 상처로 남게 됩니다.  

 

칼에 의한 상처보다 언어의 폭력이 더 무서운 상처입니다.

 

주변을 살펴보세요. 나의 말로 인하여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고통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내 가정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내(남편) 일수도 있고, 자녀 일수도 있고, 부모 일수도 있습니다. 

 

직장 안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말은 칼보다 무섭습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 영혼을 환란에서 보존하느니라.(잠21:23)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숙한 인격은 상대의 말을 경청 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고 했습니다.(약1:19)

 

가정에서나, 교회서나, 사회서나 덕을 끼치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사랑을 주는, 그런 말이 은혜를 

끼치는 말입니다.

 

3) 은혜를 무너트리는 말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혀의 위력을 세 가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약3:4절에 혀를 배로 비유하고, 3:6절에 불로 비유하고,

 약3:7-8절에는 길들일 수 없는 지체라고 했습니다. 

 

말이 이토록 위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30초 동안 내 뱉는 말이, 가슴속에 30년 남습니다.

 

손에 의한 폭력보다 말에 의한 폭력이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말은 칼보다 무서운 지체입니다. 칼에 찔린 상처는 꿰매면 치료가 됩니다.  그러나 말에 의한 상처는 아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력 있는 말을 회복해야 됩니다. 

얼굴에 아름다움이 있듯이, 말도 똑같은 말이 아닙니다.

음식에 맛이 있듯이 언어에도 맛이 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우주만물에 조화가 있듯이 말에도 조화가 있습니다. 

절망을 주는 말이 있고, 희망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요? 

덕을 세우는 말을 하세요.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세요.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말을 하세요. 그러면 모든관계가 형통해 집니다. 

  

2, 또 하나는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일이 은혜를 막습니다.(30절)

 

1) 성령은 인격을 갖고 계십니다.

 

성령은 기뻐도, 슬퍼도 하시고, 근심도 하십니다.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엡4:30)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롬8:26)   

 

성령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면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을 하면 성령이 근심도 하시고, 

탄식도 하십니다.

 

2) 언제 성령이 근심 하시나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31절) 

 

여기에 지적한 다섯가지 요소들은,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됩니다. 마귀사단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혈관이 막히면 건강이 무너지듯, 은혜가 막히면 성령의 감동이 떠납니다.

 

성령은 항상 감동과 깨달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려고 할 때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선악의 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성령께 물어 보세요.

 

성령께서 영감으로 나침반처럼 선악을 알려 주십니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행2:4)

 

바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행16:6)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고 방향을 바꿔서 유럽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성령께 길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을 근심되게 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리며 사는 것이 효도이듯이, 성령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않기를 축복 합니다.

 

3, 또 하나, 용서치 못하는 마음이 은혜를 막습니다.(32절)

 

1) 용서는 상처를 치유합니다.

 

(1) 마음에 분노를 계속 품고 용서하지 않을 때, 정신세계가 황폐해 

   져서 신경질적이며 증오하길 잘하고 인격이 무너집니다.

 

(2) 용서치 아니하면 불면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같은 질병이 많아 

   지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이 파괴됩니다.

 

진정한 용서만이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의 치유는 용서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용서하지 못할 때, 삶이 병들게 됩니다.

 

용서는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치료하고, 육체까지 치료하는 능력이 됩니다. 상대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 같으나, 자신이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고백입니다. 

남편이 바람피우고, 가정을 버리고 떠났답니다. 

 

안 해본 것 없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2자녀를 키우고 대학까지 졸업을 시켰고, 외롭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했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 권사의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늘 두통이 심하고 소화가 안 되어서, 병원엘 가면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어느 날 가출했던 남편이 병들어 찾아왔는데, 남편만은 용서가 되지 않았답니다.  용서를 구할 때, 메몰 차게 해서 되돌려 보냈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목사님이 찾아와서 용서를 하지 못하는 권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용서는 남편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사님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권사님께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상처를 입고 살았는지 

목사님은 모릅니다. 하면서 막 해댔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못합니다. 억울해서 못합니다.

 

권사님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권사님은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하겠다고 고백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남편을 용서하고 나니, 몇 십년 동안 괴롭히던 두통과 소화불량이 깨끗이 치료가 되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 

 

2) 용서의 모델은 주님이십니다.(32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힘든 일이고, 용서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주님은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며, 침을 뱃고 조롱하는 이들을 향해“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짓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이것이 주님의 용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심 같이 서로 용서하라. 고 하셨습니다.(32절 하)

 

우리는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에 동참하며 기도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갈2:2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롬 5:8~9)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용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은혜를 경험한 바울은 십자가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셋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삶은 용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를 옥에 가두거나 힘들게 해도, 용서의 맘을 주셨습니다.

 

용서는 뒤틀린 관계를 회복 할뿐 아니라, 

 

자신이 먼저 억압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평안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이 잘되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막는 요소를 신앙의 눈으로 조명해 보았습니다. 

 

(1) 더러운 말들,          (2)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일 들, 

(3) 용서치 못하는 마음이 은혜를 막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로 바꿔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면서 살 때 막힌 은혜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막는 방해요소들을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원수마귀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 이런 방해요소들을 통해 신앙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를 짖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요일3:8)

 

성령 충만하여 이런 방해요소들을 뛰어넘고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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