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오직 예수 십자가입니다

김경열 목사 0 2020.05.24 17:16

본문말씀 : 갈 6:11-16

제 목 : 오직 예수 십자가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4:14)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om the world 

 is crucified unto me, and I unto the world.

 (Galatians 6:14)]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랑거리가 많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우리 엄마, 아빠가 사준 거라고 자랑하고, 

십대 청소년들은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자랑하고 

브랜드 물품, 컴퓨터 게임 등을 자랑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자녀들과 부, 명예, 학벌이나 직업 등을 자랑합니다. 

 

심지어 할머니들도 자기 손주들을 

엄청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손주 자랑하려면 3만원씩 내고

하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마지막 부분에 보면

'자랑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골프에 푹 빠진 장로님 있었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고 맑은 주일 아침에

장로님은 너무 골프를 치고 싶어서 갈등하다가

결국 교회에 "몸이 아파서 못 간다."는 전화를 하고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을 본 천사가 하나님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 장로 혼 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장로님이 어떻게..."

 하나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골프장에 도착한 장로는 1번 홀에서 힘차게 스윙했고

볼은 무려 350 야드를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진 뒤

홀컵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홀인원이 된 것입니다. 

장로님은 흥분했습니다. 역시.......

 

그런데 천사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하나님!,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홀인원이라니요?"

 

그때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사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게 벌이다. 생각해 봐라. 

 저 장로가 이 일을 누구에게 자랑하겠냐?

 

 자랑을 하면 주일에 골프 친 것이 들통 날 테고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냐?”

 

여러분!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면

예수 믿는 성도들은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대해 

자랑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본문 11절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11절)

 

이 아주 짧은 구절은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구절입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는 당시 사도 바울이

안질이라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글씨를 읽거나 쓰고 일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지금까지 자신이 직접 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대필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만이 아니라

로마서를 기록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는 ‘더디오’라는 형제가 대필했습니다.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아마 로마서도 사도바울 옆에 더디오 라는 형제가 앉아서

말씀하는 것을 받아 적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은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라고 말합니다. 

 

대필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대필을 하게 했지만

‘지금부터 쓰는 것은 내가 직접 쓰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1. 바울이 대필을 하지 않고 직접 쓴 이유는

‘큰 글자로 썼다’는 것은 바울이 안질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석가들의 분석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왜 여기서 부터는 

자신이 직접 썼다고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1) 사도바울이 직접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11절)                   

중요한 것 일수록 글 보다는 언어 표현이 좋고

전화보다는 만나서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해결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1) 사도 바울이 큰 글자로 써서 꼭 말하려고 했던 것은?(11)

성도들에게 직접 말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할례주의자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진리를 전하는 

이단 사이비에 대한 폭로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다른 복음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였던

할례주의자들에 대항해서 복음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2)‘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이란

할례주의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 뿐이라.”(12절)

 

바울은 여기에서 ‘그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은 그들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받을 핍박과 박해를 피하려고 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할례주의자들의 숨은 의도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박해를 피해보려는 것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생각하고 있었고 

예수 믿는 자들을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중에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주변 사람에게 "나는 예수를 믿는다.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그는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유대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야이시다."라고 말했다간, 

곧바로 욕을 얻어먹거나, 놀림을 당하거나,

왕따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감추고

다른 유대인이 보란듯이 율법은 중요하고

할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요즘 우리 중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같이 하면서도

실제로 예수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오래 전에 사립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기 학교 선생님 중에는 교직원 개인기록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은 분들이 많이 있는데

스스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분은

몇 사람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기회주의자)

 

괜히 예수 믿는 것을 드러냈다가는 욕먹고

손해 볼 것 같으니까 자기 신앙을 감추고

마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회식자리에서 적당하게 술 마시고

죄를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바울 당시에도 유대인이 모여 살고 있었던 그 지역에서는 

할례를 받아야 유대인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 박해를 피하려고

할례를 받았던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그들이 너희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한 가지 동기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손쉬운 방법으로 남들 앞에서 좋게

보이려고 할뿐이지, 믿음으로 살겠다는 용기,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할 

용기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혹시 손해 볼 수 있고,

불편을 겪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기거나, 

겨우 자기 믿음을 지키는 그 정도가 되어서 안 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이 

당시 왕후였던 유독시아의 계략으로

멀리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쫓겨 가기 전,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할 때

“여러분! 저는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제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죽음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쫓겨 가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아닙니다.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만약 이 세상에서 나를 쫓겨내면

 하늘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재산과 소유를 빼앗기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그것 역시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빼앗겨도 하늘에 쌓여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산으로 몰아내면 나는 엘리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지면 나는 예레미야가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바다에 던지면 나는 요나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돌로 치면 스데반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매로 치면 나는 사도 바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당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미혹했던 할례주의자들은 스스로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13)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3) 바로 ‘자기 자랑거리’를 추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례를 주장한 것은 

하나의 위선에 불과했습니다. 

 

위선이란 ‘진짜 속셈을 숨기고 그런 체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그런 체 하는 것’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이런 모습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체하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게 위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합니다. 

교회 안의 모습이나 교회 밖의 모습이 

똑같아야 합니다. 

 

여기서 하는 말과 나가서 하는 말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정직하고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2. 또 직접 쓴 다른 이유는 바울의 자랑거리 입니다.

 

1)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자랑거리라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진짜 자랑거리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14절)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자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결코 없다.’

는 것이고 다른 또 하나는 

‘나는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자기의 자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17)

 

1)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자랑할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한 사람입니다.(빌 3:3)

 

어떤 사람이 자기 육체를 자랑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빌 3:4) 

 

나는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입니다.” 

 

이 말은 언뜻 듣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는 대단한 말입니다. 

바울은 뼛속까지 진짜 유대인이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바울은

“율법에 있어서는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심에 있어서는 교회를 박해한 자였고,

 율법의 의에 있어서는 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어설프게 할례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율법으로 말하자면 ‘내가 바리새파 사람이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젊었을 때, 그런 바리새파 행동 대장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사사 받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해서 

아람어와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도 잘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었고

거기에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7)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오물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8)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자랑거리로 삼았던 것들을 

다 해로 여기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나는 그런 세상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고백입니다. 

 

2) 바울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자였습니다.

 

초대교회라는 곳이 생겨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표적이 일어나며 민심이 동요하고 

술렁이고 있었습니다.(행 8)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그들을 잡아 벌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스테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고

빌립이 복음 전한다는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는 중에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행 9:3)

 

한마디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나니까 

보는 관점,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보니까 

세상 자랑거리는 다 하찮은 것이요, 

쓰레기통에 버려도 괜찮은 것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 못 박힌 것만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3) 바울이 알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이 ‘내가 갈망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힌 것 외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바울이 알고 싶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의 못 박힌 것이라 했습니다.  

 

(1) 바울이 알고 싶어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예수는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16)

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은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고백하는냐에 따라 

종착역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에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2)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 분이 못 박힌 십자가만이 우리 인간들을

모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들이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오직 예수 십자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과 

온갖 마음의 상처로 병든 사람들이 치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저 불타는 지옥에서 영영한 형벌 받을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원수마귀 권세를 이길 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능력이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알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만이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가슴으로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울처럼 고백할 것입니다.

 

저는 예수 믿지 않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저의 집안은 넉넉하지 못한 시골에서 

자식은 9남매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집은 어머니가 정안수를 떠놓고 

합장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미신을 섬기고 굿을 수시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집에 복음의 빛이 비쳤습니다. 

하나님이 저주 아래 놓인 저들을 찾아오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

가족들 한 명, 한 명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집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주가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구원하시고 제 인생을 변화시킨 것만이 아니라

아예 저의 집을 송두리째 새롭게 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받으리라.(행 16:31)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저의 자랑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 분의 십자가입니다.

 

(2) 구원받은 자들의 삶입니다.

 

나는 이제 세상과 아무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다음에 나오는 

바울이 고백이 참 좋습니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제는 세상과 나는 아무 상관없다.’

는 말입니다.(14)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며 

“그리스도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14절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자신’과 ‘세상’을 

냉철하게 구별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신앙 생활해야 

험한 세상을 넉넉히 이깁니다. 

 

세상 욕망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는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부러워하면 세상에 지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가슴에 새기고

되새김질하고 또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의식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아세례 받았다고 그 아이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살겠다고 했습니다.(갈 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교의식은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세례 받을 때 머리에 물을 뿌렸느냐, 

진짜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자랑거리는 사도바울처럼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가 되시길 바랍니다.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십자가 때문에 삶의 목적을 발견하였고, 

십자가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외에, 무엇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오직 예수 십자가’ 날마다 전하며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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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4 빌립보서 4장 1-7절 말씀 묵상 [이정애 사모] 복음뉴스 2023.01.18
4703 로마서 3장 21-31절 말씀 묵상 [유재도 목사] 복음뉴스 2023.01.18
4702 사무엘하 18장 1-33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복음뉴스 2023.01.17
4701 빌립보서 3장 10-21절 말씀 묵상 [이정애 사모] 복음뉴스 2023.01.17
4700 요한계시록 22장 1-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2023.01.17
4699 사무엘상 17장 1-29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복음뉴스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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