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identity)이 분명한 사람의 기쁨”[요한복음 3:29, 신부(people of Israel)를 취하는 자는 신랑(메시아=예수 그리스도)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세례요한)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세례요한)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세례 요한은 자기의 때가 끝난 것을 알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쓸쓸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물러나는 기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신랑(예수 그리스도)의 잔치소리를 듣는 친구(세례요한)가 크게 기뻐합니다. 나(세례요한)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였느니라.”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기시대의 마감이라는 것을 의미 없는 종결이거나 실패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더욱 복되고 영광스러운(메시아) 시대를 역사(현장) 속에서 “맞이하였다(시작하였다)”는 경험을 너무나 감격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장차 성령세례를 주실 그 분에게 물세례를 주어 이스라엘(people) 앞에 그분(메시아)을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하여 세워진 자신의 정체성을 세례요한은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광야와 같이 황폐해진 이스라엘(people)을 찾아오시는 하나님(Jesus)을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하는 자에 대한 정체성이 세례요한에게는 뚜렷하였습니다.
••• 심지어 자신이 소개한 메시아의 최고사명(=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직접 자신의 눈과 귀와 경험으로 목격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약 30세에 순교하였을지라도), 메시아 시대와 연결되었다는 것(자체)을 너무나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례요한에 대하여 이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태복음 11:1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비록 오늘날 아무리 부요하고 풍족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더 나아가서 땅의 역사에서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는 영적으로 복된 시대에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정체성(What is Christian?)을 깨닫지 못하고 오래오래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겨우 30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았을지라도, 나는 이러한 기쁨(메시아의 천국잔치)이 충만하다/완전하다고 고백한 세례 요한의 삶과 그 정체성에 대하여 여러분의 눈과 귀와 마음이 열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