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행1:4-8 (성령강림 주일)
제 목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세요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And, being assembled together with,
commanded them that they should not
depart from Jerusalem, but wait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 which, saith he ye
have heard of me.(Acts 1:4)]
영국에서 죄수가 40년간 교도소 수감 중에
가죽채찍으로 50번씩 수십 차례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증오만 생겼지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이나 교도소에서도
항상 고민거리였답니다.
그런데 그가 구세군 숙박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인연으로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 믿게 되었으며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죽 채찍으로 매를 맞고
40년간의 교도소 생활로도 변화되지 않은 그가
그리스도로 인해 불과 하루 밤에
변화되었다는 간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변화란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등의 비전이
본질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은혜의 열매는 변화에서 나타납니다.
못된 사람도 새 사람이 됩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도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됩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고
악습관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신분이 바뀝니다.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언어가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생활 속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에게도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올바른 신앙은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됩니다.
야곱이 변해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악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설익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연조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이 변화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변화됩니다.
성령께서 내 속에 들어와 역사하도록
마음 문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의 변화는 심령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대부분이
심령의 문제였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하셨고
마음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5:8)
예수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마 15:11)
겉모습만 거룩한 척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너희 속은 열린 무덤 속 같고 입술은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롬 3:13-14)
진정한 신앙은
내면적인 변화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변화의 그 주체가 바로 성령이십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나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제자들 삶의 터닝 포인트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강림 이후에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바로 변화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삶 속에서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고 본질이 달라지고
가치관 정체성이 달라졌습니다.
(1) 자기 자랑만 일삼고 높아지려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는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2) 또한, 소유개념이 바뀌었습니다.
내 것이라 하던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3) 또한, 내가 주인이었던 삶이 하나님이 주인되었습니다.
(4) 또한, 오순절 역사로부터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체는 오직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예배도
성령이 지배(임재)하는 예배,
성령이 충만한 찬양,
성령의 감동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심에는
항상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떠나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요 14:26)
보혜사는 '파라 클레토스'로
위로자, 돕는 자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성령님께 일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을 4천 년 간 하시다가 예수께 넘기시고
예수님은 33년간 사역하시다가
다시 성령께 바톤을 넘기셨고
성령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입니다.
사역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혼구원의 같은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학교 운동회 때 마지막으로 하는
청백계주처럼 이어 달립니다.
성령은 마지막 주자이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2:32)
이는 성령 이후에 다음 주자,
곧 기회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통해서 변화의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힘 없이 죽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예루살렘을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상처받고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은 실패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1. 먼저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4절)
1) 예루살렘은 실패와 상처를 받은 곳입니다.
구속사적 의미에서 예루살렘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장소입니다.(창 22)
이곳에 솔로몬 성전이 건축된 곳이기도 합니다.(대하 3:1)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인류구원을 완성하신 곳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입니다.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은 장소입니다.
제자들에게 환란과 핍박으로 고통의 장소였고
삼년동안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따랐던 주님이
힘 한번 쓰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신
실패한 기억만 있는 곳이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루살렘을 왜 떠나지 말라고 하시는가요?
떠나지 말라는 것은 문제를 피하지 말고
사명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예루살렘’같은 환경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기대했던 일들이 오히려 실패로 찾아오고
병들고 배신당하여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고
그냥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민 온 분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꿈을 안고 고국을 떠났지만 몇 년 지나는 동안에
있는 것 다 쓰고 사람 잘못 만나 어려움도 당하고
병도 생겨 오갈 데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중역이었고
SKY출신이라고 힘주고 살던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밑바닥의 3D 업종의 일을 하면서
후회하는 이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문제를 피해 보려고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룻기 서에 나오는 나오미의 가정을 보세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고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남편 잃고 두 아들을 잃고
다시 돌아오는 나오미를 반길 때,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 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 쓴잔을 마셨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피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딪쳐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문제를 만났을 때 피하지 말고 부딪쳐 해결하세요.
혹시, 힘들고 어렵다고 도망쳤다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세요.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회복될 때까지 기도하세요.
그러면 무엇을 믿고 기다려야 하나요?
2)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4절)
우리의 기다림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5절)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의 삶은
내 생각이나 내 방법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천로역정을 쓴 영국에 '존 번연'목사님이
국왕의 명령을 어기고 전도한 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느 날 존 번연 목사를 존경하는 교도관이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잠깐 쉬었다 오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왔습니다.
교도관이 목사님 왜? 다시 오셨느냐고 물으니
"형제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국왕이 사전 연락도 없이
감옥 시찰을 하면서 존 번연을 직접 확인하고 돌아갔답니다.
이때 교도관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저는 가라 오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각 내 방법이 아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령님께 길을 묻고 성령의 인도를 따를 때
성령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2.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7절)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시니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의 때와
기한이 이 때 입니까? 하고 물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 역사의 시간표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섭리하시고 국가의 역사도 주관하십니다.
개인의 종말도 세상의 모든 역사의 종말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즉, 생사화복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역사의 시간표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압니다.
2) 성경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이 있습니다.
(1) 죽음의 비밀입니다. 죽음의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2) 또한, 주님 재림 시간의 비밀입니다.
반드시 주님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3) 또한, 기도 응답의 시간이 비밀입니다.
오늘 기도가 잘 됐다고 금방 응답 받는 것 아니고
졸면서 기도했다고 응답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응답이 언제인지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될 때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곡식을 조금씩 잡아 뽑는다고
빨리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갈 6:9)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3.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8절)
요엘 선지자에게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셔서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해주실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욜 2:28-32)
1) 성령을 통해 권능이 임합니다.(8절)
권능이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것 같은 힘을 뜻합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1) 성령 충만할 때 귀신이 떠나가고 병마가 떠나갔습니다.
(2) 성령 충만할 때 나약했던 사람도
담대하고 힘 있는 사람이 됩니다.
(3) 겁 많고 자신감이 없던 사람을
담대한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할 때 죄와 싸워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이 권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슥 4:6)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그렇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 하셨습니다.(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보낼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요 14:26)
너희에게 보낼 진리의 성령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요 15:26)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함이니라.(눅 4:18-19)
2) 성령을 통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8절)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사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증인이란 법정 용어로 목격자란 뜻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목격자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고 전했습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이 영혼구원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선교(전도)하고
선교지에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1866년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 국적의
제너럴 셔먼호가 나타났는데
이 배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한국 교회사의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입니다.
영국 선교사로 24살의 나이에 파송을 받아 중국에 도착했는데
낯선 환경에 병을 얻어 아내 캐롤라인이 죽고
어려운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조선 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그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성경책 200여권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그 씨가 떨어져 지금 백령도는 90%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대동강변에 도착했을 때
입국불가 통지에도 불구하고 대동강을 거슬러 가다
조선군과 무력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대동강변에 좌초된 배에서 사력을 다해
강가로 책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한 권의 성경책을 품안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곧 조선군에게 생포되었습니다.
처단 임무를 박춘권이 맡았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 토마스의 목을 치려할 때
급히 자기 품에 들렸던 성경책을 꺼내어
박춘권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토마스 선교사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받은 이들 중에 훗날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쳤던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그가 준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 교회'의 예배 처소가 되었습니다.
비록 조선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음을 당한 토마스 선교사였지만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헛되지 않고
오늘날 한국의 복음화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백 여년 전 우리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고
희망을 잃었던 암울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의 현장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주일 계속되는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선교사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민족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한국인을 무시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회개를 했습니다.
목회자들은 “양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회개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일어나 자신의 과오를 울면서 뉘우쳤습니다.
이들은 첩을 두고 심지어 도둑질까지 했다고
고백하는 등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온 교회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길선주 장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는 아간과 같은 사람이라면서 공개적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친구가 죽어가면서 맡겼던 돈의 일부를
떼어 먹었다고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가 도화선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였습니다.
이후에 이곳에서 있었던 회개운동이
평양 주변부터 전국에 시골까지 번져갔습니다.
이 부흥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도덕성과 영적 성장이
더 높은 수준으로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 여년 전 평양에 일어났던
대부흥 운동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옷을 찢는 흉내만 내지 말고
무슨 이벤트에만 매달리지 말고
가장 본질적인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오순절 날에 처음 임한
성령 강림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역사했으나
겉에서 사역을 도왔습니다.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67),
시므온 위에서 일 하셨습니다.(눅 2:25)
그래서 다윗도 죄를 짓고 성령을
거두어 가지 말라고 회개했습니다.(시 51:11)
그런데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후에는
내주 내재하는 역사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며
은사로 열매 맺게 하고 계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너희 속에서 말하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니라.(마 10:20 하)
성령강림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성육신하여 오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려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도 결국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의 증인되라고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루살렘을 떠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새 힘을 얻어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우리 가정부터, 우리 이웃부터, 우리 주변부터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가야 합니다.
유대는 민족의 복음화요,
사마리아 땅 끝은 세계선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빌 바를 모를 때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십니다.(롬 8:26)
그러므로 성령께 길을 물으세요.
안내자가 되십니다.
네비게이션 되어 주십니다.
기관차가 화물칸을 끌고 가듯
성령이 우리를 끌고 갑니다.
화물칸에 무엇이 있든 기관차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길도
보혜사 성령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힘들다고 넘어졌다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세요.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권능이 여러분에게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