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에스겔 47장 1-12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1.02.21 19:04

본문말씀 : 겔47:1-12

제  목 : 임계점을 넘기세요.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가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겔47:12) And by the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shall grow all trees for meat,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 it shall bring forth new fruit according to his months, because their waters they issued out of the sanctuary :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meat,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 47:12)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님의 이 시는 세상의 일들이 하루아침에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어떤 일이든 최소한 1만 시간은 채워야 특정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노력하는 시간입니다. 

 

전문가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하고 지나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은 100 도가 넘어야 끓기 시작합니다. 

 

99도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끓지 않습니다. 

 

우후죽순(雨後竹筍), 물먹은 대나무는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모죽’ 이 있습니다.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5년쯤 지나고 나면 죽순이 돋아나는데, 하루에 70-80cm 씩 자라기 시작 해 4개월 만에 30m 정도 자란다고 합니다.

 

왜 5년 동안 죽순도 나지 않았던 것일까? 를 조사해 보았더니, 대나무의 뿌리가 수십 미터가 넘도록 땅속으로 깊이 뻗어 가는 시간이 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후 급속하게 자랍니다. 

 

곡식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조금씩 잡아 뽑아서 되는 게 아닙니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을 임계점(Critical point) 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쉽게 포기를 합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은 포기를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실패와 고생을 거듭해도, 분명 성공할 날이 올 것을 긍정적으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간이 미래를 다지는 밑거름이 된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성경에도 임계점(臨界點) 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고, 기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대하는 기준치는 각각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몹시 낙심하고 있을 때, 주신 묵시가 있습니다.

 

합2:3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비록 더딜 찌라도 기다리라 지체 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더딜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요즘 삶을 너무 힘들어합니다. 

 

주님이 속히 오셨으면, 좋겠다고 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시간에 도달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이 빨리 안 된다고 절망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임계점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도 달아보시고 재어도 보십니다. 

 

다니엘서에 벨사살 왕에게 세계 최고의 바벨론 왕권을 주셨습니다.

 

벨사살은 왕위를 받고, 교만하여 하나님도 무시했습니다. 

 

천 여명을 초청하여 성전의 성물로 술잔을 삼고 파티를 할 때,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서 벽에 글씨를 쓰는데, 기절초풍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단5:25)에 이라고 썼습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벨사살 왕을 재어보시고 달아보시고 부족하여 메데 파사로 쪼개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던 복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주신 복을 빼앗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사울왕도 세우셨고, 폐하시기도 하셨습니다.(삼상16:1) (행13:21-22)

 

하나님께서 달아보실 때 부족함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뉴욕영안교회 설립 5주년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양병희 목사님께서 뉴욕에 많은 교회 중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뉴욕에 영성을 책임지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번에 안수집사, 권사님도 세우십니다.

 

모두 귀한 분들로 좋은 기둥으로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부족함이 없는, 영안교회에 든든한 기둥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욥31:6)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공평한 저울로 달아보시고, 믿음, 기도, 충성이 부족함을 보이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겔이 본 환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 지쳐 희망을 잃었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선지를 통해 다시 회복하시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환상 중에 한 성전이 나타나더니,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난 물이 점점 깊어져서 흘러넘치는 희망의 환상입니다.

 

성전은 예수그리스도 몸입니다.

 

성전은 예수그리스도, 자기 육체를 말하고 있습니다.(요2:21)

 

예수그리스도는 몸 된 교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골1:18)

 

이 물은 성전에서 열납되는 예배를 통해주시는 생수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세상 물과 달리 한번 먹으면, 영원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고 소개했습니다(요4:14)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이런 물을 내게도 주사, 물 길으러 오지 않고, 영원이 목마르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요4:15)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라.(요4:23)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물이 흘러넘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뜻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강 좌우편 나무 잎이 마르고 열매가 없고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포로에서 희망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모습, 희망을 잃고 지칠 때의 모습입니다. 

 

이러할 때 에스겔에게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회복되는 비전을, 환상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 기도, 구제, 기쁨, 웃음이, 흘러넘치는 은혜로 회복 되어야 합니다. 

 

낙심, 절망의 뿌리, 근원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복되었는가요?

 

1,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회복시켰습니다.(1-2절)

 

 1) 성전이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1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잎이 무성해 지고 열매가 맺었습니다. 

 

성전에서 나와 물이 닿는데 마다 살아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과 비전의 출발점은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이 바로 희망과 생명의 근원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성전을 중심해서 삶의 구심점을 정하고 삽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가서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를 드렸습니다.(단6:10)

 

유대인들은 집을 지을 때도, 어느 방향에 있든지 드나드는 문을 예루살렘 성전 쪽을 향해 짖는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성전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하나님께서 성전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의 중심이 성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전 중심한 삶이란? 하나님 중심한 삶을 말합니다.

 

목사 중심으로 교회가 개척되고, 누가 헌금을 많이 했어도 교회는 하나님이 중심(주인) 이어야 합니다.

 

우리도 성전 중심한 삶, 즉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에 흐르는 생명수가 여러분의 심령에 가정에, 교회에 민족 속에 흘러가야 합니다.

 

2) 성도는 세 가지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1) 마음의 성전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고,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마음의 성전을 이루고 살 때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하늘의 소망을 누리게 됩니다.

 

마음의 성전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늘 마음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2) 또 하나는, 천상의 성전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천국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이곳이 천상의 성전입니다. (계21:4)

 

이 세상은 나그네 길입니다.

 

우리는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사단이 역사 하는 곳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멸망시키고, 아프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가 이생을 떠나, 가는 천국은 마귀가 없는 곳이기에, 다시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눈물이 없는 곳 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직접 예비하신 곳입니다.

 

장례식 때 마다, 아프고 힘들고 고통이 없는 주님이 계시는 곳에서 영원히 살기를 기원합니다.

 

(3) 유형 성전입니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마16:18)

 

성전은 주님이 세운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내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주님이 보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마음의 성전을 이루고, 지상성전에서 살다가 천상의 성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모시고 천국 갈 때 까지, 말씀을 먹고 양육을 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제자를 삼고 영혼을 구원하는 방주가 됩니다. 

 

그러기에 성전 중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전 중심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찬예식 성례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살다가, 천상의 성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3-5절)

 

오늘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통해 회복되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점점 깊어져서 강을 이룰 때, 에스겔을 물에 들어가 재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발목에 차니 다시 들어가게 하시고, 또 재어 보시고, 무릎에 차오르니 측량해 보고, 다시 재어보시고 다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네 번째 흘러넘쳐서 창일한 물이 될 때 까지, 다시 재어 보셨습니다. 

 

‘다시’ 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신앙의 깊이를 재어보십니다. 

 

‘다시’ 재어 보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네 번을 측량 하고서야 기대치에 찼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기대치가 곧 임계점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1) 우리의 신앙 속에 믿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드리라고 할 때, 모리아 산으로 삼일 길 가는 동안 하나님은 침묵 하셨습니다. 

 

칼을 들어 이삭을 죽여 제물로 드리려는 순간까지, 침묵하시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고 하셨습니다. 

(창22:12)

 

‘이제야’ 는 말하고 있는 이제서야, 비로서 의미에 부사입니다.

 

이제야 라는 말씀이 하나님이 원하신 믿음과 순종의 임계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도 달아보시고, 재어 보십니다.

 

2) 또한, 기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전쟁포로로 최악의 상황에도,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최고로 알고, 믿고 의지하는 당당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나라가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단10:12-14)

 

다니엘의 작정기도 첫날 응답하셨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10:13-14절에 21일 후에 응답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주었는데, 바사국이 막고 있어 미가엘 천사를 통해 바사 국을 제거하고, 21만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응답을 받은 것과 누리는 것은 다릅니다. 

 

에서는 장자의 복을 받았지만, 누리지를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매우 답답해합니다. 

 

그러나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까지 기도가 찾을 때,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

 

지금 기도의 분량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몇%가 부족한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 기도의 분량은 하나님 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이 재어보시고 분량이 찰 때, 응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마7:7)

 

그러므로 기도에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이 차기까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3) 또한, 충성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충성을 눈가림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귀하게 쓰신 것은 목동으로 있을 때, 이리가 양을 물어가면 이리의 입을 찢어서 양을 빼앗아 왔고, 군인으로 있을 때는 군인으로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삼상17:34-35)

 

이런 다윗의 충성됨을 보시고 훗날에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봉사를 하든, 헌신을 하든, 충성을 하든 하나님 앞에 중심으로 하세요.

 

하나님이 재어 보실 때, 부족함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믿음이나, 기도나 충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임계점을 넘으시길 축복합니다. 

 

3. 임계점을 넘을 때 나타나는 축복을 보세요. (9-12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러넘칠 때, 세 가지 은혜가 임했습니다.

 

1)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강 좌우에 죽어가던 나무들이 살아났습니다.(9절)

 

성전에서 나온 물이 닿는 순간 생명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살아나야 합니다. 

생명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 생명운동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러넘칠 때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신앙도 생명이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생명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은혜도, 사랑도, 기쁨과 평안도 흘러 넘쳐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이 차고 넘칠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2) 또한, 어부들이 찾아 왔습니다.(10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창일하여 흘러넘칠 때, 고기들이 심히 많아서 어부들이 모여왔습니다. 

 

고기가 있으니 자연 어부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모여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공하면 사람들이 모여 찾아옵니다. 

 

인사하는 사람도 많고, 찾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나면 모두 떠납니다. 

 

친구도 떠나고, 이웃도 떠나고 하물며 형제도 떠나더랍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냉정합니다. 상대적입니다. 

세상은 얻을 것(먹을 것) 이 있을 때. 모여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패 했을 때나 병들었을 때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변함없이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고, 임마누엘 하고 계십니다.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함에도 독생자를 통해 구원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러기에 주님과 동행 하세요.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직장을 찾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므로 그곳이 좋은 직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축복의 땅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까닭에 그 땅이 축복의 땅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까닭에, 애굽 사람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창39:5)

 

아브라함 까닭에 다른 모든 민족 사람이 복을 받았습니다.

 

3) 달마다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12절)

 

나무가 물가에 서 있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생명의 물이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물가에서 있는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은혜 안에 서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시1:4) 

 

잎사귀는 버리는 줄 알았더니 다 약재로 쓰이더라.(겔47: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시91:14에도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그를 높이이라.

 

여기에 한즉, 안즉 은 임계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을 넘어야 합니다. 

 

차고, 흘러넘쳐야 합니다. 

 

은혜도 흘러 넘쳐야 하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도 흘러 넘쳐야 하고, 

기도도 흘러 넘쳐야 합니다.

 

나무가 심히 많아 졌고 생물이 살았습니다(7절)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었습니다.(8절)

 

결과로 고기가 많아지고, 다 살아났습니다(9절)

고기 종류가 심히 많아졌습니다.(10절)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가 맺혔습니다(12절)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었습니다(12절)

 

여호와는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시고, 우리의 행동도 달아보시고, 우리의 생각(사상)도 달아 보십니다.

 

하나님은 다 재어보시고 달아 보십니다. 

 

기도도, 믿음도, 충성도 임계점을 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임계점을 넘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메말라 있지는 않습니까? 차고, 흘러 넘쳐야 합니다. 

 

생수는 온전한 예배를 통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모든 응답은 임계점을 넘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도 은혜가 흘러넘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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