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

 

이민목회 8년차 원도연 목사의 고백 설교 "인도하는 목자, 끌고가는 목자"

복음뉴스 0 2020.01.06 22:36
RCA 한인교회협의회 뉴욕 뉴저지 2020년 연합 신년 하례식이 1월 6일(월) 오전 10시 30분에 뉴저지 시온제일교회에서 개최되었다. 하례식은 예배, 중식, 게임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1212969804_MRJUsoEH_b1ab1384980324ce85980c167b1da508929fbe34.jpg

뉴저지 회장 원도연 목사(시온제일교회)가 설교를 맡았다. 원도연 목사는 RCA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에 속한 목회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시온제일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지 8년이 된 원도연 목사는, 원하지 않았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과정, 아기의 우유와 기저귀를 살 돈이 필요해서 누군가가 펑크를 낸 헌신 예배의 설교를 맡게 된 일, 그 설교로 인하여 시온제일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일, 조금도 변하지 않는 성도들로 인하여 갈등했던 일, 기도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깨우침을 통해,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을 깨닫게 된 일 들을 간증했다.


다음은 원 목사의 설교 내용이다.

제목 : 인도하는 목자, 끌고가는 목자
본문 : 요한복음 10장 1-10절

2020년 RCA 한인교협 뉴욕 뉴저지 연합 하례 예배에 오신 RCA 산하 모든 목사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

제가 2019-2020년 뉴저지 회장 직을 맡은 관계로, 이렇게 부족한 제가 감히 이 자리에 서서, 선배 목사님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저 말고 다른 선배 목사님들이 말씀을 전하셔야 맞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과 같이 고사를 좋아하셔서, 어떻게 하다보니 설교 바톤이 저에게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뉴저지 목사님들 중에 가장 막내여서, 더 이상 내려 갈 데가 없어 이렇게 부족한 제가 감히 많은 목회 경험과 큰 영성을 가지신 선배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 하는 것이 부담을 넘어 민망하기 까지 합니다.

아무쪼록 너무나 부족한 설교이지만 후배 목사가 무엇을 고민하고 사는지 한 번 들어 보시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구요. 혹시나 많은 선배 목사님들께서 저의 이 부족한 설교를 통해 잠시 잊으셨던 옛 초심의 마음을 돌아 보실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내키지 않은 유학의 길

저는 2009년도에 유학으로 미국 땅을 처음 밟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제가 한 번도 생각도 꿈도 꿔 보지 않은 곳이어서 미국으로 유학온다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이제 곧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데, 목사 안수 후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그저 ‘유학이나 가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유학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 전에 부모님들의 권유도 있었고, 장인 어르신께서 저를 만날 때 마다 “자네는 목사 안수 받고 뭘 할 작정인가?” 라고 물으셔서, 그 질문을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 “네.. 저 미국 유학 갈 것 입니다” 라고 대답 했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본의아니게 떠밀린 미국행

그래서 목사 안수는 받고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점점 우물쭈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유학을 가겠다고 말은 해 놓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섬겼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통해 제가 유학을 갈 수 밖에 없도록 저를 몰아 가셨습니다.

2008년 12월 초였습니다. 갑자기 담임목사님께서 저에게 아무 상의도 없이 “원도연 목사님께서는 이제 2019년 1월에 미국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라고 선포를 해 버리신 것 입니다.

물론 담임목사님께는 제가 미국유학을 갈 것과, 혹시 가게 되면 1월이 아닐까 라고 그저 정해지지 않은 제 생각을 말씀 드렸을 뿐인데, 목사님께서는 제가 1월에 가는 것으로 이해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파송을 받아 버리게 되었고, 예배 끝난 후에 성도님들께서 다 저에게 악수를 청하시며 “원목사님 유학 잘 다녀 오십시오” 라는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빼도 박도 못하고 미국에 갈 수 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하나님

그 때 부터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마음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도살장에 억지로 끌려 가는 소처럼, 저는 유학생활을 위한 짐을 챙기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 저를 좀 말려 주세요. 가지 못하게 해 주세요” 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뭔가 큰 일이 터져서 미국에 못 들어가게 될 것을 기대 했건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굴은 웃었지만 속으로는 울면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게 되었습니다.

"3년만 마치면,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태평양 상공을 나르는 동안 제 마음은 오직 하나 뿐 이었습니다. “딱 3년이다. 3년 만 마치면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면서 또 이런 기도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한 3년 동안 저는 저의 3년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면 제가 처음 미국 땅에 도착하여 인도 받는 교회를 무조건 3년 동안은 섬기겠습니다” 라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서원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다녔던 비블리컬 신학교가 있는 필라델피아에 도착했고 그 다음 날 한 장로님의 인도함을 받아,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한 교회에서 미국에서의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영어권 중심의 인터내셔날교회에서 사역 시작

미국 첫 교회, 한인교회가 무엇인지도, 미국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처음 갔던 그 교회는 2세 한인들과 영어권 중심의 인터네셔널 교회였습니다. 저는 미국의 모든 한인교회가 그런 식인줄 알았습니다. 2세 자녀들이 주축이 되서 11시에 대 예배를 드리고, 그들의 부모인 1세대 들은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 였습니다.

2세를 위해 1세들이 희생하는 교회 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2세들이 교회의 주역들이었습니다. 오자 마자 영어로 대화가 오가는데, 첫 날 교회 참석하고 “아… 이 교회는 아니다” 라는 마음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다른 교회를 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하루 만에 정내미 떨어진 교회였는데, 저는 2주 3주 그렇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그렇게 교회를 출석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저 같이 미국에 갓 도착한 한인 1세 목사님은 길어야 2주 참석하고 다른 한인교회를 찾아 다 떠나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인 1세가 2세교회를 꾸역 꾸역 나오니 그들도 희한하고 “도대체 이 목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것 때문에 비상 대책 회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이 미국에서 첫 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할 말은 참으로 많지만, 다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약속한 3년이 1달 남은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제게 행하셨습니다.

3년이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저는 드디어 하나님께 약속의 시간을 채웠고, 또 3년 유학 생활이 끝나면 돌아갈 거라고 결심 했기에 담임목사님께 사임을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때 까지 저는 1시에 예배 드리는 한인들을 위한 한어권 부목사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임을 말씀 드리고 이제 갈 준비를 하고, 혹시 기회가 닿으면 진짜 한인 교회에 가서 1~2년 정도 부목사로 섬긴 뒤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결정 되지 않은 그 때에 같은 교회를 섬겼던 한 자매가 저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유값, 기저귀값 필요해 땜빵 설교 맡아

“저 목사님.. 뉴저지에서 저희 아버지께서 목회를 하고 계신데요. 이 번 주 수요일 중고등부 헌신예배라고 하는데 설교자가 그만 못오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급하게 설교자를 찾고 계신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해 주실 수 있나요?”

그 때 제 아내가 둘 째 아들을 막 출산하던 때라서 기저귀 값과 분유값이 필요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저귀 값과 분유값 벌고자 가겠다고 했습니다. 거의 2시간이나 걸려서 뉴저지 한 작은 교회에서 약 20명 남짓 한 학생들과 성도분들 앞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설교 후 집에 와서 이메일을 살펴 보는데 갑자기 그 곳 목사님,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정병일 목사님께서 제게 이 메일을 보내신 것입니다.

정병일 목사님 후임으로 시온제일교회 담임목사 청빙 받아

“제가 65세에 조기 은퇴를 할 예정인데 저를 대신하여 후임 담임목사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이지요. 저는 그 때 그 메일을 받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이민 교회 담임목사 되기 굉장히 쉽구나.. 나 같은 사람에게 담임목사 제안도 하시고..”

그 정병일 목사님의 후임 담임목사 청빙에 저는 마음이 그렇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저는 담임목사 될 준비도 안 되었었고, 이민 목회는 생각지도 안 했기 때문 이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 일차 목표 였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 거절할 구실이 필요 했었습니다. 정병일 목사님께 정중하게 거절할 명분이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섬겼던 교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과 리더들에게 물었습니다. “영어도 모르고 미국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저 같은 사람이 이민 목회 하면 안 되겠죠?”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저를 아는 그 분들이 저를 말려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 잘 알고 계셨군요. 네 죄송한 말씀이지만 원 목사님은 이민 목회 하면 안 되실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묻는 분 마다 제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다른 목사님이라면 모르겠는데 원 목사님이라면 잘 하실 것 같습니다” “목사님 얼른 한다고 말씀하세요. 그게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그 말 듣는데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내 속 마음도 모르고 왜 나보고 자꾸 미국에 남아 있으라 하는거지?”

시온제일교회의 청빙을 수락

부르심이 있었고 주변 분들도 제게 다 하라고 하니 저는 그 부르심에 일단은 따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절대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 큰교회 섬기고 싶었는데 작은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이민의 이 자로 모르는 사람이 이민목회라는 것을 하게 된 것 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고 두려웠습니다.

“이민 목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과연 여기서 수 십 년을 사신 분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잘 할 수 있을까?”

실수 투성이 초년병 담임목사

아니나 다를까 첫 몇 해는 정말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원로 목사님께서 제게 담임목사를 위임하자 마자 원로목사님을 모든 직책에서 내려 오도록 만들어서 원로목사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이 무엇을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해 주었습니다. 영적으로 케어 하고 싶어도 제가 이 이민목회에 적응하느니라 그 분들을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님들도 저 때문에 상처 받고 영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명도, 자신도 없이 시작한 이민목회

저는 이민목회 처음 3년 동안 너무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소명을 가지고 시작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이민목회를 소명도 없이, 결단도 없이 그저 억지로 마지 못해 하는 느낌이어서 하루 하루가 늘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더욱 제 마음을 힘들게 한 것은 제 아내와 제 아이들이 미국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 이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미국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서, 이민 생활을 하기 싫어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도 아이들도 너무 적응을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민 목회가 너무 하기 싫은데 가족은 적응해 가니 이리 하지도 못하고, 저리 하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저 소위 사례 받고 살려고 목회를 하는 마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겁니다.

매 주일 설교는 해야 하는데 기쁨이 없고 억지로 이민 목회를 하는 것 같아 성도들에게도 정말 미안한 마음 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능력 있고, 나 보다 이민목회에 소명이 있고, 나 보다 영어도 잘하고 리더쉽이 있는 분이 이 교회를 맡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 한 두 번 한게 아니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성도들 때문에 절망

특별히 이민목회를 하면서 저를 더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그래도 맡기신 일인데 한 번 열심히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여러가지 사역 계획도 준비하고, 브리핑도 하고, 교육도 하고, 또 그 일을 위해 설교도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했는데, 성도님들이 반응과 변화가 없는 겁니다.
한 번은 변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정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그렇게 사시면 안 된다고, 이제 정말 작은 것이라도 변화 되야 한다고” 울부짖으며 설교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다음 새벽예배 때에 장로님 권사님 부부 두 사람 만 빼고, 한 분도 나오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고 제가 목회에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더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온 인격과 내 모든 열정과 심지어는 내 모든 눈물까지도 쏟아 바치며 설교 했는데 어찌 단 한명도 변화 되는 모습이 없는가?” 이 마음이 드니까 이민목회 하는 일에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이민 목회 안 할래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돌 같은 마음 가진 성도들하고 더 이상 목회 못하겠습니다. 저 한국 돌아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의 외마디 외침에 그 어떤 답도 안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갔다가 부모님과 다툼이 이었고 그로 인하여 저도 제 아내도 큰 상처를 받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까지도 막아 버리셨습니다.

억지로 끌려간 6년 동안의 목회

그렇게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끌려 목회를 6년을 하게 된 것 입니다. 겉은 멀쩡한 것처럼 보였지만 제 속사람은 완전히 후패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목회 하는것  때문에 하나님께 죄송했고, 성도님들께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목회도 그만 두려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목회 하는 것은 민폐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괴로운 마음과 고통의 마음 속에서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 마음을 주셨습니다.

"목회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원 목사야. 너는 목회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 음성이 들렸을 때 저는 “열심히 하는 것 입니다. 성도들로 하나님 섬기는 일꾼 세우는 것 입니다. 그게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답해 주셨습니다. “아니다. 원목사야. 그건 목회가 아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목회가 무엇 입니까?”

“목회란 내 양들을 데리고 와서 내 꼴을 먹게 하는 것이 목회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겁니다.

"목회는 내가 한다"

“너는 목회 하는데 특별히 할 것이 없다. 목회는 내가 한다. 너는 그저 내가 목자로 있는 그 우리 안으로 내 양들을 이끌고 오면 되는 거다. 그리고 그들로 그 곳에서 푸른 꼴을 마음것 먹게 하는 것 그게 목회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서 말이지요.

저는 그 때 망치로 제 머리를 한 대 맞는 것과 같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목회는 목사인 제가 열심을 내서 저 염소같은 (제가 보기에) 성도를 영으로 개조시키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훈련 시키고 변화 시켜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일꾼이요 도구 만드는 것이 목회라 생각했었습니다.

"네가 먹이려고 하지 마라. 내가 먹인다"

그런데 제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그게 목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회는 그저 성도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 오기만 하면 되는 거다. 네가 뭘 먹이려고 하지 마라. 내가 먹인다. 네가 뭘 변화 시키려 하지 마라. 그건 목자인 내가 할 일이다. 너는 그저 인도만 잘 하거라. 그리고 내게 맡겨라” 

요한복음 10장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저는 30대의 열정과 제 모든 인격과 성경적 지식을 쏟아 부었고, 그것에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하게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의 열정과 인격과 성경지식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였고, 전혀 효과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설교가 깊지 않아서 그런가?” “나이가 연소하여 영향력이 없어서 그런가?” “이민 경험이 없어서 성도들에게 도움이 안 되서 그러나?” “아니면 이민 교회 소명 없이 시작한 나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나?” “아니면 나를 이민 목회라는 광야에 던져 넣고 잘 살아 남는가 하나님께서 지켜 보고 계신건가?”

목회가 제 뜻 대로 되지 않으니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목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

그런데 그렇게 좌충우돌,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제게 하나님께서 목회 8년 만에 말씀해 주신 겁니다.

“목회는 네가 하는게 아니야. 목회는 내가 하는 거야. 너의 소임은 내 양을 내 우리로 끌고 오는 것 그것만 잘 하면 되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이 말씀이 들리니 제 안에서 점점 자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 입니다. 잘 변화 되지 않는 성도들에 대해 더 이상 화가 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잘 변화 시키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해서도 더 이상 스스로 정죄하고, 괴롭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 입니다.

“나는 그저 성도를 주님께 만 인도하면 된다” “처음 부터 이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성도들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는 것 그것을 목회의 목표 삼아야 겠다” 이 마음을 가지니까 심방에 대한 개념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라진 심방에 대한 부담

그 전 까지 심방하는 일은 제게 괴로운 일이었고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잘 변하지 않을 성도들 인데 찾아가면 뭐하나?” 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예수님께서 직접 목회하신다고 생각하니 심방에 부담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찾아가서 그를 변화 시키지 못한다 할 지라도 그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책임지실 것이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나 대신하여 그를 변화 시키실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바귀니 심방해서 변하지 않을 성도들 걱정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심방 가서 은혜 받고 조금이라도 변화 되면 감사 한 일이고” “그러지 않다 할 지라도 예수님의 양이니까 예수님께서 언젠가는 변화 시키시겠지.. 내가 급한가? 예수님이 급하시지?”

"끌고가는 목회가 아니라 인도하는 목회를 하라"

지금까지 저는 소위 “끌고 가는 목회”를 했던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제게 말씀하신 것 입니다. “끌고 가는 목회 하지 말고 인도하는 목회 하라”

“네가 무슨 힘으로 그리고 어디가 어딘줄 알고 네가 그 양무리를 끌고 가려는 목회 하려느냐? 예수님이 목자니 그에게 맡겨라. 너는 그들을 그에게 인도만 해라. 나머지 끌고 가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실 것이다” 이 마음을 깨닫게 되면서 부터 설교에도 자유가 찾아 왔습니다.

지금도 가능하면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 설교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도들은 잘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끌고 가는 목회가 아니라 인도하는 목회를 하니 설교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패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마음 속에서 뭔가 하나라도 바꾸시겠지” 라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이제 조금 “이민 목회 감당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의 목회는 아직 진행형이고, 또 어떤 변수로 제가 실망하고 낙심하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참 목자는 내가 아니라 예수야.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거야” 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만 하더라도 저는 정말 목회의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의 목회는 끌고 가는 목회입니까? 아니면 인도하는 목회 입니까?

혹시 저 처럼 끌고 가는 목회를 하고 계시다면, 이제 예수님께 인도하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많은 목회의 부담과 스트레스에서 벋어나 정말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형들 보다 나를 애굽으로 보내신 것 입니다” 라는 그 한 마디 깨닫고자 거의 17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이 참 목자다. 목회는 예수님이 하시는 거다” 이 한 마디 깨달음을 알고자 지금까지 험난한 목회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양의 문이다” 라고 말 입니다.

우리는 참 목자에게 고용 된 작은 목자 입니다. 양과 함께 수 년 또는 수 십 년을 함께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목양을 통해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목양 받고 그분의 꼴을 먹을 때 참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욕심 부리지 말아야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에 우리가 너무 욕심 부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제 남은 목회를 예수님께 맡기십시다.

끌고 가는 목회 하지 말고 인도하는 목회를 해 봅시다.

그리할 때 나도 살고, 성도도 사는 다시 말해 모두가 함께 사는 그런 목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20년 한 해 여기 계신 모든 목사님들에게 그런 은혜가 임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85 '뉴욕교협을 아끼고 사랑하는 목사들의 모임'(교아사목) 기자 회견 열어 자신들의 입장 밝혀 댓글+3 복음뉴스 2023.01.06
584 "동포사회가 뉴욕목사회를 통하여 아름답게 성장하길!" - 김홍석 뉴욕목사회장 신년 인사 복음뉴스 2023.01.04
583 뉴욕교협은 왜 목사 부회장 이기응 목사의 사퇴를 발표하지 않는가? - 김동욱 목사 김동욱 2022.12.30
582 고블린 모드에 물든 목사들 - 한준희 목사 한준희 목사 2022.12.29
581 이게 깽판이지 화합이냐? - 김동욱 목사 댓글+1 김동욱 2022.12.29
580 "교계 화합"? 화합을 가장한 기만(欺瞞)이다. - 김동욱 목사 김동욱 2022.12.28
579 뉴저지우리교회 - 설립 13년만에 첫 유아 세례식 거행, 수세자는 오종민 목사의 첫 손자 댓글+4 복음뉴스 2022.12.26
578 김학룡 목사 부부, 도미니카에 신학교 설립 사명 안고 선교사로 파송 받아 댓글+3 복음뉴스 2022.12.21
577 "함께 세워가는 목사회" - 뉴욕목사회 제51회기 김홍석호(號) 출범 댓글+3 복음뉴스 2022.12.13
576 즐거움과 감사가 넘친 제1회 글로벌총신의 밤 댓글+3 복음뉴스 2022.12.11
575 뉴욕교협 제49회기 회장 선거 소회(所懷) - 김동욱 목사 김동욱 2022.12.10
574 무엇을 위한 교계 단체인가? - 한준희 목사 한준희 목사 2022.12.10
573 미동부국제기아대책기구 ‘2022 후원자의 밤’ 복음뉴스 2022.12.05
572 '만나서 나누자!' 뉴저지목사회 제13회기 회장 홍인석 목사 취임 댓글+3 복음뉴스 2022.11.25
571 총체적 부실, 불법 운영을 한 교협 - 한준희 목사 한준희 목사 2022.11.23
570 뉴욕목사회 - 회장 후보 김홍석 목사, 부회장 후보 정관호 목사 확정 댓글+1 복음뉴스 2022.11.19
569 니카라과 연합장로회 독노회 창립노회와 2023 니카라과 전도대회 - 이동홍 선교사 댓글+1 이동홍 선교사 2022.11.18
568 더사랑교회(구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제3대 담임 안진성 목사 위임 예배 댓글+1 복음뉴스 2022.11.15
567 뉴욕교협 - 회장 후보 이준성 목사 중도 '사퇴', 부회장 이기응 목사, 김일태 성도 선출 댓글+2 복음뉴스 2022.10.27
566 뉴욕교계에 사상 초유의 회장 낙선 운동 바람 불어 - 김동욱 목사 댓글+1 김동욱 2022.10.26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